현대차는 사업 목표와 방향을 함께 제시하며 중고차 시장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밝혔지만, 중고차 매매업계는 '독과점' 현상이 불 보듯 뻔하다며 생태계 독식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8일 업계 안팎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관할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가 이달 중순 회의를 열고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현대차 입장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 "5년, 10만㎞ 이내 인증 중고차만 판매…정보 불균형 해소"
현대차가 이날 밝힌 중고차 사업 목표와 방향의 대표적인 내용은 중고차 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신차 수준의 상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현대차는 자사가 보유한 기술력을 활용해 성능검사와 수리를 거친 '인증 중고차(CPO·Certified Pre-Owned)'만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3단계에 걸친 중고차 품질검사와 인증체계(매집점검-정밀진단-인증검사)도 마련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5년, 10만㎞ 이내의 자사 브랜드 차량을 대상으로 국내 최대 수준인 200여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실시하고, 이를 통과한 차량을 신차 수준의 상품과 판매 과정을 거쳐 선보인다는 복안이다.
특히 5년, 10만km 이내의 자사 브랜드 중고차 중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차량만 판매하고 판매 대상 범위를 벗어난 차량은 경매 등의 방법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내년도 시장점유율을 2.5%로 잡고 2023년 3.6%, 2024년 5.1%로 단계적으로 올리되 자체적으로 제한하겠다고 설명했다. 사업계획과 시장점유율 등을 따져 볼 때 중고차 매매업계가 제기하는 독과점 우려가 지나치다는 취지다.
앞서 자동차산업협회도 지난달 국내 완성차 업계 5개사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자체 시장점유율 제한과 사업계획 등을 고려할 때 2026년 5개사 시장점유율이 7.5~12.9%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불균형한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도 구축한다고 밝혔다. 판매자의 중고차 정보 독점을 해소하고 중고차 시장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온라인으로 판매 채널도 확장할 방침이다. 모바일 앱 기반의 온라인 가상 전시장을 운영, 소비자가 직접 검색하고 360도 가상현실(VR)을 활용해 차량을 직접 구석구석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중고차 매매업계 "'트레이드 인'·'경매', 물량과 가격 조절 가능"
중고차 매매업계는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면 중고차 매입 과정에서 독과점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현대차가 인증 중고차만 판매한다고 밝혔지만, 매입 제한이 없는 상황에서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물량을 대거 확보할 경우 중고차 매매업계는 버틸 힘이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중고차 매매업계는 현대차가 밝힌 내용 중 '트레이드 인' 프로그램과 판매 대상 범위를 넘어선 차량을 '경매' 방식으로 공급하겠다는 내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트레이드 인은 현대차가 고객이 타던 차를 팔고 신차를 구매할 경우 신차를 할인해 주는 일종의 보상 판매 프로그램이다.
현대차는 차량 성능·상태·이력 정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공정한 가격으로 매입해 중고차 처리와 신차 구입이 '원스톱'으로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중고차 매매업계 측은 트레이드 인 구조가 중고차 물량이 현대차에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중고차 매매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차들을 매입해서 판매하기 좋고 이익이 많이 남는 5년 미만의 차는 인증 중고차 명목으로 팔고 그 외 차량은 경매로 공급하겠다고 한다"면서 "매입을 다 잡으면 유통 비용 등이 나올 텐데 경매로 공급하면 이런 비용도 다 반영이 될 텐데 결국 일종의 플랫폼 사업을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대차가 초과 물량에 대해 경매 방식으로 공급하겠다는 방식에 대해서도 물량은 물론 가격까지 조절 가능한 구조라는 입장이다. 중고차 매입 이후 유통 비용 등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지해성 사무국장은 "중고차 매매업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은 매입 시장인데 신차 구입 시 프로모션을 하면 소비자 대부분은 현대차에 매각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대차가 매입된 차량으로 중고차 시장에서 가격이나 물량을 조절하는 구조가 되면 장기적으로는 중고차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는 중고차 시장도 독과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허위' 매물 등 소비자 불신, 완성차 업계 중고차 시장 진출 힘 실어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불신'도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데 힘이 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허위·미끼 매물이나 사고·침수 이력을 조작한 차량의 판매가 이뤄지는 중고차 피해 사례 등이 알려지면서 소비자 권익과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지난해 12월 자동차시민연합은 감사원에 중소기업벤처기업부를 상대로 국민감사 추진을 위해 청구인 300명을 모집한 바 있다.
당시 자동차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국내 완성차업계도 이제는 중고차 시장 진입을 머뭇거려선 안 된다"라며 "지금까지 중고차 시장에서 반복된 피해만 받아온 중고차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선택권 확대를 위해 국내 완성차업계는 즉각 중고차 시장에 진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고차 매매업계도 허위, 미끼 매물 등에 대한 소비자 피해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지 사무국장은 "중고차 시장에 허위, 미끼 매물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시스템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허위, 미끼 매물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매매업자가 아닌 사람은 영리를 목적으로 인터넷 광고를 못하게 하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매매업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지난해 중고차 판매업 관련 을지로위원회 상생협력위원회 좌장을 맡은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협의안을 만들면서 중고차 업계 목소리를 반영해서 검증 방법 등 (완성차 업계에) 걸림돌을 만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심의위원회에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려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고 바로 이어지는 사업조정을 통해서 지난 상생협력위원회에서 나왔던 협의안을 기준으로 해서 사업조정을 하면 (완성차 업체 진출과 관련해)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기업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를 결정지을 중고차판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는 이르면 다음 주 열릴 전망이다. 앞서 심의위는 지난 1월 14일 회의를 열고 관련 논의를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