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국내 코로나19 대유행이 정점을 향해가는 가운데 '스텔스 오미크론'이라 불리는 하위 계통의 점유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정식 명칭이 'BA.2'인 이 바이러스는 현재 국내 우세종인 기존 오미크론(BA.1)보다 전파력이 약 30% 더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초 국내 검출률이 1%에 불과했던 BA.2가 한 달여 만에 20%를 넘기면서, 유행 정점의 파고가 더 높아지고, 정점 도달시기도 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미크론 국내 '완전 정복'…하위계통 '스텔스 오미크론' 23% 육박
8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5일까지 국내 주요바이러스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내 감염사례의 오미크론 변이 검출률은 99.96%(5629건 중 5627건)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1일 국내 유입이 최초 확인된 오미크론은 석 달 만에 우세종을 넘어선 지배종이 됐다.해외유입 사례도 대부분(99.2%·387건)이 오미크론 변이 감염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흐름을 타고 현재 우세종의 위치에 있는 BA.1 외 또다른 오미크론의 세부계통인 BA.2도 세력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스텔스 오미크론'은 PCR 검사를 통해 판별이 어렵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이다. 다만, 방역당국은 현재 국내 PCR검사로는 감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달 첫 주만 해도 1.0%에 그쳤던 BA.2의 국내 검출률은 같은 달 둘째 주 3.8%→셋째 주 4.9%→넷째 주 10.3%로 증가하더니, 이달 첫 주 기준으로 22.9%까지 뛰어올랐다.
해외에서 입국한 환자들 사이에서는 47.3%의 검출률로 절반 가까운 비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오미크론 변이의 존재를 WHO(세계보건기구)에 처음 보고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 BA.1이 BA.2로 대체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BA.2는 지난달 초 남아공의 지배종으로 자리잡았다. 신규 확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BA.2가 100%에 거의 근접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덴마크와 중국, 인도, 필리핀 등도 스텔스 오미크론이 우세종화된 국가들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조만간 이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지난 3일 니시우라 히로시 교토(京都)대 교수를 인용해 다음 달 1일쯤이면 스텔스 오미크론이 도쿄도에서 발생하는 신규 감염자의 7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WHO는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의 5분의 1 정도가 BA.2에 감염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상발현 빠르고 감염력은 30%↑…"중증도는 큰 차이 없어"
스텔스 오미크론(BA.2)의 가장 큰 특징은 원조 격인 BA.1보다 한층 더 강화된 감염력이다. 선행 확진자의 증상이 발현된 이후 추가 감염자의 의심증상이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하는 '세대기'도 더 짧은 것으로 파악됐다.기존 오미크론(BA.1)의 평균 세대기가 3.1일(범위 1~7일)로 델타 변이(2.9~6.3일)보다 짧은 점을 고려하면, 전파속도에 강점이 있는 오미크론의 특성이 더욱 진화한 바이러스라고 볼 수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전날 방대본 브리핑에서 "WHO의 평가에 따르면, BA.2가 BA.1보다는 약 30% 정도 전파력이 높을 수 있고, 평균 세대기도 조금 짧아져서 0.5일 정도 더 빠르다"며 "약간의 전파속도를 올리는 데는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 부분이 어느 정도까지 (국내 확산세에)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BA.2에 감염됐을 경우, 중증도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BA.1을 넘어설 만큼의 파괴력은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론이다.
마리아 밴 커코브 WHO 코로나19 기술팀장은 지난달 22일 "여러 나라 국민 표본을 근거로 볼 때 BA.1과 BA.2의 중증도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또 "BA.2는 입원 위험 측면에서 BA.1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것은 많은 나라에서 BA.1과 BA.2가 모두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남아공 연구진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20일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추적조사한 결과, 종전 오미크론 변이(BA.1) 감염자의 입원율은 3.4%였고 BA.2 감염자의 경우 3.6%로 나타났다.
입원환자 3058명 중 심각한 질환은 BA.1 감염자가 33.5%, BA.2가 30.5%로 조사됐다. 일부 결과는 BA.2가 조금 더 우위에 있지만,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통계적 수치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물론 해당 연구가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받지 않았다는 점, 남아공의 경우 초기 변이에 감염됐던 환자들이 재감염된 사례가 많았다는 점은 참작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스텔스 오미크론이 더 심각한 중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일본 도쿄대 사토 케이 연구원팀은 지난달 의학논문 사전 등록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org)에서 BA.2가 BA.1보다 빨리 확산될 뿐 아니라 중증도 더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BA.2 역시 BA.1과 마찬가지로 백신 접종으로 인한 면역을 회피할 수 있으며 BA.2를 단순히 오미크론의 일종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놨다.
정 청장은 이에 대해 "일본에서의 보고나 특히 햄스터 등 동물을 이용한 실험결과에서는 (BA.2가) 굉장히 빠른 증식성을 보이고, 폐 조직 손상과 같은 병원성이 높을 가능성을 얘기한다"면서도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조금 더 중증도를 높이는지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심사는 BA.2가 백신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평가인데 최근 다른 나라에서 확인된 백신 (회피)효과 면에서도 BA.1과 BA.2가 큰 차이를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며 "지속적으로 영향 분석 및 모니터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전문가 "국내서도 재감염 의심사례…유행정점 더 커지고 빠를 듯"
지금까지 국내에서 주종인 BA.1에 감염됐다가 스텔스 오미크론(BA.2)에 재감염된 사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의심사례는 포착되고 있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BA.1에 감염됐던 사람 중 BA.2에 재감염된 사례들이 외국에서 보고되고 있고, 의심되는 사례가 저희 병원에서도 있었는데 확증은 못했다"며 "유전자 염기서열 검사를 해야 하는데 첫 감염 당시 검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감염이 강하게 의심되는 이유로는 감염 간격을 들었다. 델타 변이가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시점에서 4주 만에 코로나19 재확진 판정을 받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엄 교수는 "4주 만에 똑같은 바이러스에 정상 면역인 사람이 감염될 확률은 없다"며 "2~3개월 전 델타가 한창 돌 때 감염됐던 사람이 오미크론 유행 후 (코로나19에) 다시 걸린 사례는 알고 있지만, 오미크론의 검출률이 거의 99%가 된 상황에서 2~3주 만에 재감염된 사례는 (BA.2 감염이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행양상을 토대로 볼 때 BA.2가 우세종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도 봤다. 엄 교수는 이달 중순으로 예측되고 있는 유행 정점과 관련해 "더 빠르고, (규모가) 더 높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유행 지속기간은 조금 더 짧아질 가능성이 있다. 애초 6월 초중순~7월까지 예상했다면 이제는 5월 말 정도면 전체적인 유행이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며 "대신 '피크'가 높아질 것 "이라고 말했다.
BA.2의 중증 위험에 대해서는 "아직은 '있다', '없다'보다 '잘 모르겠다'가 정확한 답"이라며 "(전 국민의) 20~30%가 감염돼야 현 유행이 감소세로 전환될 텐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