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테니스가 15년 만에 세계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단식 간판 권순우(65위·당진시청)가 에이스답게 승리를 이끌었다.
박승규 감독(KDB산업은행)이 이끈 대표팀은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실내 코트에서 열린 '2022 데이비스컵 테니스 파이널스' 예선에서 오스트리아를 매치 전적 3 대 1로 눌렀다. 전날 단식에서 1승 1패를 거둔 대표팀은 이날 복식과 단식에서 이기며 승리를 확정했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 16강에 진출했다. 2007년 9월 당시 이형택, 임규태, 전웅선 등 대표팀이 슬로바키아를 3 대 1로 누르며 16강에 오른 이후 무려 15년 만이다.
권순우가 승리의 주역이었다. 권순우는 전날 2단식에서 유리 로디오노프(194위)를 2 대 0(7-5 6-4)으로 제압한 데 이어 이날 데니스 노박(143위)와 에이스 대결에서도 2 대 0(7-5 7-5)으로 이겼다.
앞서 3복식에서 남지성(복식 247위·세종시청)-송민규(복식 358위·KDB산업은행)가 알렉산더 엘러(복식 105위)-루카스 미들러(복식 117위) 조를 2 대 0(6-4 6-3)으로 누른 만큼 분위기는 한국 쪽으로 흘렀다. 권순우가 1승만 보태면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될 참이었다.
하지만 노박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권순우는 2019년 4월 남자프로테니스(ATP) 싼타이쯔 챌린저대회 4강 등 앞선 2번의 대결에서 모두 노박에 졌다.
이날도 승부는 팽팽했다. 권순우는 1세트에서 게임 스코어 5 대 5로 노박과 호각지세를 보였다. 상대의 강한 서브와 스트로크에 쉽지 않은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끈질긴 수비와 코너를 찌르는 깊숙한 포핸드 스트로크로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1세트를 잡아냈다.
기세를 몰아 권순우는 2세트 연속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3 대 0까지 앞서 승기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지친 듯했던 노박도 역시 더블 브레이크로 4 대 4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하지만 권순우의 뒷심이 빛났다. 권순우는 역시 5 대 5로 맞선 가운데 엄청난 코트 커버력으로 노박의 공격을 받아냈다. 이어진 절묘한 로브에 노박은 스매싱 실수를 연발하며 서브 게임을 내줬다. 결국 권순우는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켜내며 실내 코트에 모인 관계자와 동호인들의 환호 속에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권순우는 박 감독 등 선수단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선수단은 대한테니스협회 정희균 회장을 헹가래치며 15년 만의 16강 진출을 자축했다.
경기 후 권순우는 "감독, 코치님과 동료들까지 힘을 모아 승리할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하마터면 지는 줄 알았다"면서 "원래 1세트를 내주고 2세트 브레이크를 2번 당하면 풀어지기 마련인데 상대가 다시 살아나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노박에 대한 설욕 의지를 다졌던 만큼 흔들리지 않았다. 권순우는 "예전에 챌린저 대회 때도 실내 코트에서 2번 졌다"면서 "그래선지 노박이 훈련 때부터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자신감이 있더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한번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다"고 강조했다.
당시 권순우는 세계 랭킹이 160위 권으로 노박과 비슷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둘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권순우는 지난해 프랑스오픈 3회전 진출과 ATP 투어 아스타나오픈 우승 등을 이루며 52위까지 오른 바 있다. 그만큼 실력도 좋아지고 경험도 쌓였다.
16강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권순우는 "예전 이형택 선배님이 이룬 업적도 대단하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감독, 코치님은 물론 팀 동료들과 함께 이형택 선배님 이상을 바라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세계 16강인 데이비스컵 파이널스는 오는 9월 4개 조로 4개국씩 조별 리그를 벌여 각 조 2위까지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데이비스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권순우는 다음 주 미국으로 떠나 ATP 투어를 재개한다. 권순우는 "일단 랭킹을 끌어올리면서 오는 5월 프랑스오픈을 준비해 지난해 3회전 이상을 목표로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