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토론장보다는 장외에서 주로 설전을 벌여왔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이재명 대선 후보가 마지막 TV토론회에서 말 그대로 불꽃 튀는 대결을 펼쳤다.
복지, 인구절벽 등 사회 분야 토론이었지만, 대장동을 화두로 재차 격돌하며 각종 의혹과 공격을 쏟아낸 것이다.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뒀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지율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두 후보의 네거티브 설전은 대선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은 느낌마저 줬다.
대장동, 또 대장동…거칠어진 尹, 의혹 다 쏟아냈다
윤 후보는 2일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마지막 TV토론에서 대장동 사태에 화력을 집중했다.사회분야 토론인 만큼 복지, 여성, 저출생 등 정책분야 토론전이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관련한 모든 의혹을 언급하며 네거티브전을 펼쳤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정치 경력이 짧아 현안 대응과 정책 설명에 있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온 윤 후보였지만 대장동 관련 공격에는 거침이 없었다.
시간총량제 토론에서 타 후보들의 질문에 답변하기 급급했던 윤 후보는 주도권토론에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자 바로 대장동을 꺼내들었다.
그는 "대장동 사건을 이 후보께서 다 승인했음에도 검찰은 이 수사를 덮었다. 하지만 덮은 증거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며 운을 뗀 후 의혹을 쏟아냈다.
이 후보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을 잘 모른다고 부인한 데 대해 대장동 개발 수주의 중심인물인 김만배씨와 유 전 본부장이 이 후보의 측근인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 김용 전 경기도 대변인과 "의형제 도원결의를 맺었다"며 지난 토론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불러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만배씨가 '대장동 개발이 이재명 게이트다. 4천억원짜리 도둑질이다'라고 한 발언은 물론, '이 후보가 화천대유가 제대로 돈을 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정민용 변호사의 발언, 남욱 변호사의 '내가 좀 일찍 귀국했다면 민주당 후보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발언, 이 후보가 대장동 사업에서 1천억원만 챙기면 된다는 내용의 녹취, 김만배씨가 이 후보의 선거법 사건을 뒤집기 위해 대법관에게 재판로비를 했다는 남욱 변호사의 검찰 진술 등 이 후보와 관련해 보도된 의혹을 교과서 읽듯 줄줄 읽어냈다.
"이런 후보가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 이야기를 하고, 노동의 가치 이야기를 하고, 나라의 미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국민을 좀 우습게, 가볍게 보는 처사가 아니냐"며 사회 분야 내용인 것 처럼 포장했지만 그간 국민의힘 전당적 차원으로 제기해 왔던 이 후보와 관련한 의혹을 사실상 모두 꺼내든 것이다.
윤 후보의 공격은 대장동에서 그치지 않았다.
"2월 27일 이 후보께서 울산에서 '정치보복은 숨겨놨다가 나중에 몰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복대상이 누구냐"고 따져 물은데 이어, 이 후보가 자신의 질문에 재차 반문으로 맞서자 제3자인 국민의힘 안철수 후보를 활용하는 변칙 공격까지 선보였다.
윤 후보는 정신병원 입원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장에서 전문가 위원회로 넘겨야 한다는 안 후보의 공약을 물으며 "이 후보가 형님인 이재선씨나 자신을 공격하는 김모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한 현안과 관련해서 말씀을 주신 것 아니냐"고 가족 문제까지 소환했다.
아울러 이 후보가 여자친구와 그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자신의 조카를 "심신미약, 심신상실"이라고 변호한 일도 언급하며 "여성인권을 무참히 짓밟으며 페미니즘을 운운하고, 이런 분이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과연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고 싶은 나라가 되겠느냐"고 공격하기도 했다.
"특검"으로 역공나선 이재명…페미니즘 연결고리로 尹 '이대남 전략' 공격도
조카 변호 논란에 "저의 부족함이었다. 피해자 여러분께는 사죄의 말씀을 다시 드린다"며 숨을 고른 이 후보는 윤 후보의 대장동 포화에 대해 '특별검사'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이 후보는 "벌써 몇 번째 울궈(우려)먹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제안 드린다. 대선이 끝나더라도 특검을 해가지고, 반드시 '특검하자는 것에 동의해 주시고', 두 번째 거기서 '문제가 드러나면 대통령에 당선돼도 책임지자', 동의하시느냐"고 말했다.
그렇게 밝혀야 할 일이 많으면 '검찰이 여당 후보를 봐줬다'는 의혹만 제기할 것이 아니라, 둘다 공평하게 특검 앞에 서자는 것이다.
흥분한 윤 후보가 "이거 보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이 후보는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두 후보는 세 차례나 "이거 보세요"와 "동의하십니까?"를 외친 후에야 다음 토론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윤 후보가 "지금까지 다수당으로 수사를 회피했다. 대선이 국민학교 애들 반장선거냐"며 답변시간이 지났으니 넘어가겠다고 하자, 이 후보는 "대답을 안 하신다"며 끈질기게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김만배씨가 '윤 후보는 내 카드 하나면 죽는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것은 왜 인용을 안 하시냐"며 "검사를 그렇게 해오셨냐"고 검찰 경력을 비꼬기도 했다.
윤 후보의 정신병원 강제입원 공세 때는 발언권이 없음에도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시나. 경찰이 한 것이다. 경찰이 시장이 시킨 것을 하느냐"고 큰 목소리로 반박하는 적극성까지 보였다.
흥분이 식지 않은 이 후보는 마무리 발언 때도 "당연히 특검을 해야 한다"며 "특검을 하고 책임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져야 된다(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셨지 않느냐"고 윤 후보를 저격했다.
그러자 윤 후보는 "저희가 작년 9월부터 '특검을 하자', '우리 것도 할 것이 있으면 받자'고 했는데 지금까지 다수당이 이것을 채택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며 "선거를 지금 일주일 남겨놓고 또 특검을 하자고 한다"고 말해 이 후보야 말로 표를 위해 술책을 쓰고 있다고 반격했다.
이 후보는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을 주로 챙겨 온 국민의힘 선거 전략을 겨냥, 페미니즘에 기반한 공격도 펼쳤다.
이 후보는 "저출생 원인을 이야기하다가 '페미니즘 때문에 남녀 교제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저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셨다"며 페미니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앞선 토론회에서 객관적인 수치나 세부적인 정책 내용에 대한 질문에 여러 차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윤 후보의 약점을 공략한 것이다.
윤 후보가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하나", "여성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하자 마치 학생을 가르치듯 "여성의 성차별과 불평등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 불평등과 차별을 시정해 나가려는 운동을 말하는 것"이라며 지적에 나섰다.
이 후보의 질문은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일부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놀라운 말씀을 들었다"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실소까지 이끌어냈다.
"성인지" "감세 없는 복지"로 양강 비판한 심상정…尹 냉대한 안철수
지난 토론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물으며 눈길을 끌었던 심 후보는 정의당의 강점 분야인 여성과 복지, 차별금지법 등으로 양강 후보를 곤란케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윤 후보를 향해서는 "성인지 예산 제도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시느냐"고 물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이끌어냈다.
이 후보에게는 공약집에 차별금지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질문, 이 후보가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수차례 확인해왔다. 하고자 하는 일을 모두 공약에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유도했다.
이 후보, 윤 두 후보 모두 증세 없는 복지 강화를 공약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고 '감세하는 복지는 사기'라고 생각한다"며 "온갖 복지 계획을 말하고 있는데 돈을 써야 된다. 증세 계획이 없다면 100% 그냥 국가 채무로 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안 후보는 복지의 정의와 관련해 평등(equality)과 형평(equity)의 차이를 설명한 그림(키가 다른 3명이 같은 상자 위에 올라 야구 경기를 보려는 모습과 상자의 개수를 달리 해 키와 무관하게 모두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한 모습을 비교한 그림)을 보여주며 "산술적 평등보다는 형평, 공평함이 더 맞는 방향"이라고 복지론을 펼쳤다.
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윤 후보와 같은 색 넥타이 차림으로 토론에 나선 안 후보는 탄소배출에 대해 설명을 좀 해달라는 윤 후보의 요청에 "강의를 하려고 여쭤본 것이 아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여권 지지층 결속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한 넥타이를 매고 나온 이 후보는, 중도 표심을 얻기 위해 안 후보의 발언에 "훌륭한 지적이다.", "적절한 예를 들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후보 못지않은 장외 설전…민주 "원고만 줄줄" 국민의힘 "비아냥대며 무례"
이 후보와 윤 후보의 날선 설전 못지않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장외 신경전도 거세게 펼쳐졌다.민주당 선대위 박찬대 수석대변인은 토론 후 논평을 통해 "윤 후보는 토론 내내 다른 후보들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만 내놓으며 준비되지 못한 후보임을 보여줬다"며 "마지막 주도권 토론을 이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으로 일관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혹평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5번의 토론 내내 주제와 상관없이 대장동 네거티브만 했다"며 "그나마도 고개를 떨군 채 준비해온 원고만 줄줄 읽었다"고 윤 후보의 토론 능력도 폄하했다.
반면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이 후보는 마지막 토론까지 상대 후보를 다그치듯 하고 비아냥대며 무례하게 임하는 등 기본적 감정 처리도 안 되는 자세로 임했다"며 "이 후보의 주된 공약인 기본소득의 예산 마련 관련 질의를 할 때는 동문서답을 해 놓고 윤 후보가 대답할 때는 '포인트가 맞지 않는다'고 하거나 '그렇다는 거냐, 아니냐' 식의 답변을 요구한 것은 아주 실망스럽다"고 맞대응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현금성 퍼주기 복지를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원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고 오히려 '증세는 필요 없다'며 토론에서 공언했다"며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해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신설을 공언한 바 있으면서 토론에서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하며 불리한 답변은 피해갔다"고도 지적했다.
정의당 선대본 오현주 대변인은 "사회자가 심 후보에게 발언권을 부여하지 않아 질문 기회를 잃었고, 두 차례나 발언에 끼어들어 토론의 맥을 끊었다"며 "여당후보에게 유리한 편파적인 토론을 진행한 사회자와 주최 측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별도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