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여론·경제·전황' 3중고…협상테이블 앉은 러시아 속내는?

5시간 회담한 러ㆍ우크라 대표단.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열렸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5시간 만에 끝났다. 양국은 일단 조만간 다시 협상을 하기로 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두 나라 모두 출구전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물론, 선제공격을 한 러시아 또한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군사적으로는 당연히 러시아군이 우세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방어자 입장에서 선전하고 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국민들이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젤렌스키 "일부 시그널은 얻었다…분석한 뒤 추가 대응 방안 결정"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전날 열린 회담 내용을 분석한 뒤 추가 협상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비디오 연설을 통해 "협상단이 키예프로 돌아오면 우리가 들은 것을 분석할 것"이라며 "그리고 난 뒤 두 번째 협상을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양측은 벨라루스 고멜 주에서 약 5시간 동안 마주 앉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합의가 가능한 의제를 확인하고 다음에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까지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다"면서도 "일부 시그널은 얻었다"고 설명했지만 '시그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중립국화를 중점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한 반면, 우크라이나 측은 즉각 휴전과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한다고 맞선 바 있다.

협상하면서도 공격 이어가는 러시아군…속 살펴보면 공세종말점 코앞?

영국 국방부가 SNS에 공개한 1일자 전황
이런 상황에서도 러시아군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NBC 등 외신들은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리코프에서 민간 지역에 대한 포격으로 사상자가 수십명 발생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부근에서도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수송 행렬이 포착됐다. CNN 등 외신들은 미국 상업위성이 촬영한 사진 분석을 토대로 키예프 도심에서 20여km 떨어진 호스토멜 국제공항에서부터 북쪽으로 64km 넘게 러시아군 수송 행렬이 늘어서 있다고 전했다.

이 공항은 키예프로 바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로, 개전 둘째날 러시아 공수부대에 점령됐다가 다시 탈환됐다가 또 점령되는 등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군사적인 면에서 러시아가 주장하는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구 소련식 교리인 작전기동군(OMG) 개념과 유사한 모습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화력을 통해 적 전선에 돌파구를 마련한 뒤, 이를 뚫고 들어가 진격로를 마련하는 방법을 교리로 발전시켜 왔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키예프 인근 국제공항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점령, 항공수송으로 물자를 보급하려는 작전도 실행에 옮겼다. 1979년 12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대통령궁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아민 대통령을 제거하고 수도를 점령한 뒤, 친소정권을 세웠던 사례를 수도 근처 공항에 응용한 모습이다.

문제는 이러려면 공격측의 속도와 사기 그리고 전선을 뚫고 들어간 병력들이 쓸 수 있는 물자를 보급하는 병참지원이 생명이라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적 방어망을 송곳처럼 뚫고 들어가야 하는 만큼 송곳이 계속 날카로울 수 있게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북부와 동부, 남부에서 넓은 우크라이나를 동시에 공격하면서 군대가 소모하는 막대한 물자를 충당할 보급선을 스스로 길어지게 만들었다. 군대는 식량이나 탄약 등 물자가 없으면 싸울 수 없다는 상식을 생각하면, 이는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한 셈이다.

더욱이 현지에 투입된 러시아군은 무력시위를 위해 몇 달 전부터 국경지대에 배치돼 '훈련'을 하다가 투입된 만큼 피로가 심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군대가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공세종말점이 빨리 오게 된다.

우크라이나군 참모총장 SNS에 올라온 그래픽. 만들기 쉬운 화염병으로 어디를 공격해야 효율적인지 설명하고 있다.
또 이번 전쟁은 국제사회에 '명분 없는 전쟁'으로 소문난데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도 예상보다 강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내각은 결사항전을 외치고, 전직 대통령까지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상황이고 이런 소식들이 스마트폰 등을 통해 러시아군에 전해지면서 전의를 상실했다는 평가가 많다.

설사 지금 당장 전쟁이 끝나더라도 수출통제, 러시아 은행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배제, 러시아 중앙은행 제재 등 강력한 제재가 이어지면서 러시아 경제는 단기간으론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당연히 루블화 가치는 폭락하고 있고,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두 배 넘게 올린 상태다.

러시아는 이겨도 '피로스의 승리'…"아직 최악의 상황 안 왔다" 비관적 분석도

러시아군 진격에 키예프서 전투태세 갖추는 우크라 방위군. 연합뉴스
강력한 경제제재를 뻔히 예상하고도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결심한 이유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다만, 더 큰 피해를 막으려면 러시아 입장에서도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도 사실이다.

일단 양국이 다음 회담을 며칠 내로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에서 열기로 했기 때문에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기 위해 하리코프를 공격하는 등 강도가 더 높아지면서 전쟁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거나, 민간인 대상으로까지 전면 공격을 하게 되는 등 더 나쁜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비영리 연구기관 CNA의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만은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이번 전쟁은 훨씬 더 험악할 것"이라며 "러시아군이 지금까지 침투하려고 했었던 전략전술 변화를 꾀하는 증거들이 일부 있다. 러시아군이 화력과 타격, 공군력을 더 많이 이용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재확인하더라도 경제제재로 인해 이겨도 득 될 것 없는 '피로스의 승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사실이기에, 협상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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