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출국 닷새 앞두고 비행기 취소"…우크라 사태로 교민·기업 피해 우려

5일 러 출국 예정이던 A씨, 항공기 취소에 '당황'
현지 수입물품 가격 오르고 가게들도 문 닫아…교민 불안도 커
현지 기업들 "앞선 사례들로 대비"…현지 중소기업 피해 클 듯
스위프트 제재로 기업들 수출입 대금 어쩌나…개인 피해도 우려
기업 관계자 "장기화될 경우 원재료 가격 상승 및 공급망 문제 관건"

연합뉴스·스마트이미지 제공
이달 5일 러시아로 출국할 예정이던 A씨(38)는 아침에 일어나 문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출국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예약해 둔 비행기 표가 취소된 것.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유럽 국적 항공기의 러시아 입국이 중단된 것이다.

A씨는 러시아에 공장을 두고 있는 B회사 직원인 남편의 주재원 발령에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러시아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행기표가 취소되고 전세로 살던 집을 당장 비워줘야 해, 당장 기약이 없어진 출국일까지 친정이나 호텔에 머물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두 달 전 먼저 러시아로 출국해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알아보고 세간살이를 채워 넣던 남편도 황당하고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 1학년 진학 예정인 두 아들을 둔 A씨는 "무엇보다 문제는 아이들 학교"라고 말했다. 현지 국제 학교에 입학이 예정돼 있어 국내 학교에는 입학 면제를 신청해두었는데, 다시 학교를 보내야 하는지조차 종잡을 수가 없다. 현지 학교 입학에 필요한 건강검진도 예약해두었고 교복도 맞춰야 하는데, 모든 것이 '불투명한 안갯속'이다.

현지 상황도 불안하다. 가족들이 올 것을 대비해 아내의 휴대전화 등을 사러 갔던 A씨의 남편은 더욱 현지의 어려움을 체감 중이다. A씨는 "남편이 휴대전화를 사러 갔는데 불과 하루 이틀 전보다 수입 물품 가격이 배로 뛰었다고 한다. 가게를 닫는 곳도 많다. 물건 가격이 오를 것이 예상되니 가게들이 일단 문을 닫고 추이를 보고 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두 달 간 만나지 못한 아빠를 많이 그리워 하고 있지만, 정작 언제 만날지 짐작도 되지 않으니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현재 A씨는 입국이 가능한 러시아 국적기를 다시 예매해 러시아에 입국하는 방법도 알아보고 있다. 정부에서 아직 이와 관련한 안내를 받은 적도 없어 불안함은 더욱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A씨 가족과 같은 교민들과 현지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국제사회, 고강도 제재 시행 시작…한국 기업 피해 우려 '현실화'


러시아에 대한 추가제재안 발표하는 유럽연합 수뇌부.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진영이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제재에 나서면서 무엇보다 한국 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일부 러시아 은행을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스위프트는 한마디로 '안전한 글로벌 금융 거래를 위한 연결망'으로서, 세계 각국의 은행들이 다른 금융기관도 송금 업무를 할 수 있는 네트워크다.  

러시아 은행들이 스위프트에 접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러시아가 세계 금융 시장에서 차단된다는 의미다. 러시아 기업들은 앞으로 수출입 관련 돈거래를 하기 힘들어진다. 수출을 해도 대금을 받기 힘들고, 수입 대금도 지불할 수 없다. 해외에서 돈을 빌리거나 투자할 수도 없다. 스위프트가 '금융의 핵무기'로 불리는 이유다.

스위프트. 연합뉴스
문제는 러시아가 스위프트 제재를 받음으로써, 러시아 내 우리나라 기업들의 피해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경우 대금 결제 지연 및 중단에 따른 손해를 입을 수 있다. 현재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150여개사에 이른다.

러시아에서 가전제품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C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사태를 겪으며, 이같은 리스크 상황에 대해 일종의 대비같은 것이 돼 있는 상태"라며 당장은 직접적인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나마 대기업의 경우는 글로벌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거래해 큰 영향이 없을 수 있지만, 현지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 기업의 경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현지 기업들은 대체로 일단 정부의 방침에 따라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28일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결제 시스템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현대차와 기아의 러시아 수출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며 러시아 규제로 인한 현대차의 최대 손실은 2000억원, 기아의 최대 손실은 2500억원으로 추산했다. 현대차는 러시아에서 23만대 생산 능력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아울러 현지 교민들의 피해도 클 수 밖에 없다. 러시아 내 수출입이 어려워지면서 물자가 귀해지고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국 등 해외 계좌와의 개인 거래도 어려워질 수 있다.

A씨는 "현재 남편이 러시아에서 계좌를 개설해 놓고는 있지만 당장 언제 막힐지 모르니 불안하다"면서 입국할 때 현금을 최대한 준비해 가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피해'도 대비해야…원자재 가격 상승 등 우려


분주한 러시아데스크. 연합뉴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위기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기업의 생산성 하락, 대러 교역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정민현 부연구위원은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수출보다는 현지 내수 판매에 주력하고 있어 대러 제재 심화로 러시아 실물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 러시아 내수시장 위축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불확실성 확대 및 광범위한 금융제재로 인한 거래비용 증가로 교역액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대러 스위프트 제재 등으로 원재료 가격 상승 걱정도 커졌다. 러시아는 앞서 스위프트에서 축출당하면 유럽으로 석유와 가스, 금속 수출을 중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따라 유럽에 대한 에너지 및 원재료 수급이 불안정해질 경우 국제유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아르곤·크립톤·크세논 등 비활성 가스 역시 공급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침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네온 가스의 70%를 공급한다. 러시아는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팔라듐 생산 1위 국가다.

러시아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는 D기업 관계자도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이 문제"라며 장기적인 어려움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니켈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부품 가격이 인상이 될 것이다. 공급망 불안정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 상황의 핵심 포인트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5일 비상금융애로상담센터 전화(☏1332→6번), 팩스(02-3145-8662), 인터넷(www.fcsc.kr) 접수)를 통해 기업과 현지 주재원 및 유학생들의 대러 금융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접수하고 해소를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한 수출입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한 최대 2조원 규모의 긴급금융지원도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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