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그에 따른 원유 공급 차질이 우려되면서 국내 정유·화학업계가 비상체계를 가동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27일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 등이 반도체를 비롯한 하이테크 제품 등의 대(對)러시아 수출 제한 조치에 더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서까지 본격 제재를 할 경우 글로벌 공급 차질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단 미국 정부는 러시아산 원유 거래 제재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자국과 동맹이 입을 피해가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러시아산 원유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장중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국제유가는 현재 90달러 초·중반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당분간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 정유·화학사들은 유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통상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이 저유가일 때 사들였던 원유 비축분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 평가이익이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유가 상승이 장기화되면 제품 수요 둔화로 이어져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어서다.
화학업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국제유가의 강세로 원재료인 나프타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사용하는 나프타 중 수입산 비중은 약 20%이고, 이 가운데 약 23%가 러시아산이다. 만약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제한되면 다른 나라의 나프타로 수요가 몰리면서 추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유·화학사들은 국내 원유 도입량 중 러시아산은 5.6%(작년 기준) 수준으로 크지 않은 편인데다 평소 유가 변동에 대비해 수개월 단위로 재고를 확보해 놓고 있기 때문에 당장의 직접적 영향은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러시아산 원유 도입 차질 가능성에 대비해 중동·남미 등 다른 지역으로 공급선을 다변화할 준비에 착수했다.
대체 공급선으로는 이란산 원유가 거론된다. 이란과 서방의 핵 합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은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이 13% 내외인 최대 수입국 중 하나였으나, 2018년 미국 정부가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면서 수입이 금지됐다. 하지만 최근 진행 중인 미국과 이란 간의 핵 합의 복원 협상이 성과를 거둘 경우 이란산 원유 공급이 재개될 수 있고, 이는 국내 정유·화학업체 입장에서는 유가 급등의 충격을 흡수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화학업계는 수입 나프타에 대한 관세를 한시적으로 철폐해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부 문승욱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원유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대체로 3%의 관세가 적용되는데 할당 관세 적용을 확대해 원가 요인을 낮출 방안을 재정 당국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