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 하려다 '애먼' 한국 기업 잡을라

24일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에 국제사회 수출통제 및 제재 대상 주요 국가가 표시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러시아가 어떠한 형태로든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대러 수출통제 등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발해 미국 정부가 발표한 대러 수출 통제 조치가 한국 기업들의 가슴을 태우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미 동부 현지시각 24일 '대러 수출 통제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조치는 크게 5가지로 △대러 수출시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 확대 △허가 검토시 거부 정책 적용 △러시아 군부 사용 및 군용 목적 사용일 경우 수출 제한 강화 △ 미국 기술 이용 제3국 생산품의 대러 수출시 미국 정부 허가 필요 △러시아 국방부 등을 제재 명단에 등재하는 내용이다.

우선 대러 수출시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이 58개가 새로 추가돼 사실상 모든 수출 품목에 허가가 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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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국의 안보 이익과 핵확산 방지, 테러 방지, 지역 안보 유지 등을 이유로 수출에 관해 엄격한 규정을 운용하고 있다.

어떤 품목이 수출 가능한지, 어느 나라에 수출 가능한지, 수출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지 여부 등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는데, 바로 '수출행정규정'(EAR, Export administration Reguration)이다.

특히 군수용으로도 쓰일 수 있는 '이중 용도' 품목은 '무역통제목록'(CCL, Commerce Control List)으로 만들어 특별 관리하고 있다. CCL 품목은 10개 범주로 나뉘어 범주별로 다시 5개 소분류로 구분된 뒤 통제 이유를 나타내는 문자와 숫자를 조합한 번호를 부여받는데 '수출통제분류번호'(ECCN, Export Control Classification Number)다.

이 분류 번호와 미국 정부가 나름대로 등급을 매겨 관리하는 국가별 리스트를 대조하면 어떤 국가에 어떤 품목의 수출이 가능한지,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CCL 3~9 범위의 품목에 대해서는 모두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해당되는 품목 범주는 전자(반도체),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센서 및 레이저, 항행, 우주 항공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허가 없이 러시아에 수출할 수 있었던 58개 품목이 앞으로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검토도 깐깐하게 하기로 했다. 거부 정책(policy of denial)을 적용하기로 한 것인데, 한마디로 '해주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한다'는 말이다. 다만 비행 안전이나 해양 안전, 인도적 필요, 민간 통신 시설, 러시아 주재 협력국 기업의 운영에 필요한 지원 등은 건별 심사해 허가를 하기로 했다. 아울러 허가 예외 조항도 극히 제한적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주목하는 조치는 '해외직접제품'(FDP, Foreign Direct Product) 규정이다. 제3국이 미국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만든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완제품 형태가 아닌 부품이나 구성품 형태로 수출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민간 소비재로 분류되는 'EAR99' 품목은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만약 거래의 최종 상대가 러시아 군부일 경우 EAR99 품목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이같은 제한을 받게 될 러시아 국방부 등49개 단체를 일종의 제재 대상인 '거래우려자 목록'에 등재했다. 핵 개발을 하는 북한 정권 수뇌부를 제재 리스트에 올려 사치품의 수출도 통제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국내 업계에서는 FDP 규정이 실제로 시행되면 반도체 등의 러시아 수출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국산 반도체 생산에 미국산 기초 설계 기술과 소프트웨어, 장비가 사용되기 때문.자동차의 경우 미국산 차량용 반도체를 사용하면 수출이 제한될 수 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관련 긴급 현안 질의에 대해 답변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5일 국회에 출석해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가 작은데다 완성차와 가전 등 주요 수출 품목은 통제에서 제외돼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FDP 규정은 일본과 EU, 호주 등에는 적용되지 않아 한국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는 FDP 규정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비슷한 대러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거나 그런 의도를 밝히고 있다는 이유로 일부 국가에는 FDP 규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 국가는 일본을 비롯해 EU국가와 영국, 호주 등 32개국이다.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주요 국가는 대러 수출에 있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은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국회 현안 질의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조정훈 의원(시대전환)은 "러시아 제재에 우리도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왜 배제되었냐"면서 "(미국에 제재 동참의)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적용 예외 국가 목록은 초기 단계부터 제재에 동참했던 국가들로, 완성된 형태는 아니다"며 "한국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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