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이샛별 씨도 마찬가지다. 이 씨는 유권자가 됐던 20살부터 정치와 선거에 관심이 많았지만, 토론회 만큼은 보기가 머뭇거려졌다. 토론회를 유심히 본다고 해도 후보자의 공약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워서다. 이 씨는 "양자(1번 후보자와 2번 후보자 간의) 대화에서 누가 질문했고 누가 답변했는가에 대해서 수어통역사가 내용을 전달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선 토론회의 수어통역사는 단 한 명뿐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 이뤄진 대선 토론회의 중계 화면엔 한 명의 통역사가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통역사 한 명이 네 명이나 되는 후보자의 말을 시시각각 수어로 전달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두 후보가 동시에 말하거나 사회자가 중재하는 경우, 통역사 역시 곤란에 빠진다. 표정조차 언어의 수단이기에 내색하진 못하지만, 속으로는 진땀을 흘린다는 얘기다. 수어통역사 박미애 씨는 "많은 후보의 공약을 다 알아야 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발화자 별 수어통역사가 배치된다면 공약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 더 잘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방송 토론회에서 청각장애인이 불편을 겪는 일은 해묵은 문제다. 지난 2018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방송 화면송출 시 2인 이상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변한 건 없었다. 지난해 4·7재보궐선거 선거방송토론에서도, 20대 대선을 앞둔 지금도 바뀐 건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토론위원회 측은 "수어통역창이 한 명의 후보를 가리거나 자막 또는 패널을 가리면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반응이 많다며 "아무래도 선관위에서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게 공정성"이라고 말했다. 일반 시청자 입장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MBC 정책협력부 측은" (후보자별 수어통역사 배치가) 청각장애인에게 명확하게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수어 통역은 단순히 말뿐만 아니라 상황을 전체적으로 전달해야 하는데 통역사가 많으면 축소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방송에서 중요한 점은 공정성인데, 이렇게 진행된다면 집중도를 흐려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복수의 수어통역사를 배치해 토론방송을 진행했던 시도가 전무한 것도 아니다. CMB 지역방송에서 중계된 더불어 민주당 간담회에서 네 명의 후보자에게 네 명의 통역사를 배치한 적 있었다. OBS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결산 토론회'를 다중수어로 제작해 호평을 받은 바있다.
박미애 수어통역사는 "통역사 배치를 인원만큼 하니 방송이 매끄러웠다"며 "방송사는 시스템을 문제로 들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이샛별 씨는 "참정권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권리"라고 하면서 "시청권의 제한이 과연 국민의 참정권보다 앞서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사와 수어통역사, 청각장애인 당사자 간의 충분한 의견 공유로 개선될 수 있는 문제"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