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국제영화제가 선택한 차세대 여성 시네아스트 다니스 고렛 감독은 디스토피아 스릴러 '나이트 레이더스'로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또 한번 베를린의 주목을 받았다.
고렛 감독은 현대 사회를 고찰하는 가장 예리한 시선을 바탕으로 토착민이 겪은 오랜 비극의 역사를 끊어내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다니스 고렛 감독(이하 다니스) : 스크린에서 어떻게 토착민의 삶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삼자로서 토착민의 이야기는 항상 '신기한' '민속적인' 혹은 '옛날'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져 왔으니까요. 분명 트럼프 정권이 시작되면서 극심해진 혐오와 차별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지만요.
그런데 때마침 영국 대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1979년에 발매한 음반 '벽'(The Wall)이 떠올랐고, 토착민의 이야기를 리얼리즘적으로 그려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저는 폭넓은 장르적 고민과 함께 본격적으로 첫 장편 시나리오를 작업했어요.
▷ '나이트 레이더스'의 장르로 SF, 스릴러, 미스터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니스 : 북미 토착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토착민이 세대를 초월한 트라우마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역사를 잊는다면 지금뿐만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서도 과거의 비극을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비극을 끊어내려면 누구나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영화감독으로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장르를 고민했어요.
무엇보다 제 마음 한편에는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사라져가는 유산을 지키려면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믿음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죠. 다행히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은 제가 2013년에 연출한 SF 판타지 단편 '웨이크닝'에 있었어요.
'웨이크닝'을 만들 당시, 역사적 사건에 얽힌 보편적 감정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르에 담아냈더니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걸 목격했죠. 그 후로 SF·판타지와 같은 장르는 현실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두려운 사람마저 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어요.
다니스 : 2018년 10월, 타이카 와이티티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사실 타이카 와이티티를 알고 지낸 지는 15년이 넘었어요. 선댄스영화제 필름메이커 랩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이후 몇 년 동안 여러 영화 관련 행사에서 계속 만났죠.
세계관 구축, 캐릭터 디벨롭 등 전반적인 작업에 지금까지 고민했던 방향성을 확실하게 반영하고 싶었던 저로서는 마오리족 혈통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토착민의 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는 타이카 와이티티와 함께 작업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타이카 와이티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하면서 참여 의사를 물었고, 그에게서 "뭐든 다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캐나다와 뉴질랜드의 토착민이 공동 제작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시작됐죠.
다니스 : '나이트 레이더스'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역사적 진실 혹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만들었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극 중 인물들이 상대방과의 관계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고 맡은 역할을 해내요.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인물도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젊은이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에 신뢰를 보낸다는 거예요. 이런 게 진정한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트 레이더스'를 통해 많은 사람이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관계 역학도 고려하면서도, 미래를 이끌 세대만의 방식도 존중할 줄 알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