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공기는 달콤했다'…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1주일

[재택치료 체험수기②]검체채취 7일째인 24일 0시 격리해제
밥은 제때 꼬박꼬박…뻣뻣한 몸 스트레칭으로 풀고 수시 환기
집중관리군인 母, 격리 5~6일차 증상 이어져 해제연기 고민도
지표환자인 동생, 신속항원검사 '음성' 확인하고 "나는 자유다"
외부 거주 중 삼계탕 사다준 父…카톡·전화로 걱정해준 지인들
감염부터 격리까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처한 조건은 제각각

▶ 글 싣는 순서
①3차접종 한 달 만에 양성 판정…'올 것이 왔다'②'바깥 공기는 달콤했다'…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1주일
(끝)

1주일의 자가격리 기간을 함께한 감기약, 손소독제 등. 이은지 기자

"후…하…후…하…"
 
세상에 나와 자력으로 처음 호흡을 하는 사람처럼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영하 6도의 새벽 공기는 알싸했지만, 볼에 와닿는 냉기마저 반갑고 달콤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1994)에서 20년 만에 극적인 탈옥에 성공해 양팔을 뻗은 채 감격에 젖은 앤디 듀프레인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확진자의 밀접접촉자로 코로나19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받은 지 1주일째 되는 24일 0시(23일 자정) 부로 나는 '격리해제'됐다. 당국의 지침 상 완치 판정을 받은 셈이다.

 

양성만큼 두려웠던 격리…규칙적 식사·스트레칭 등 '리듬' 유지


가족의 지표환자였던 동생은 하루 먼저 격리에서 풀려난 뒤 선별진료소를 다시 찾아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음성'을 받자마자 보내온 카톡 메시지. 이은지 기자
지난 17일 선별진료소에 가면서 양성의 가능성만큼 두려웠던 것은 확진에 뒤따를 격리였다. 앞서 질병관리청은 델타보다 전파력이 빠르고 독성은 약한 오미크론 변이의 특성에 맞춰 확진자·밀접접촉자의 격리기간을 단축했다. 당초 확진 시 접종완료자는 1주일, 미접종자는 열흘을 격리해야 했지만, 이제는 모두 '7일'로 일괄 적용된다. 기산일도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확진 판정을 받은 날이 아닌 '검체채취일(PCR 검사일)'로 당겨졌다.
 
예전보단 양반이라 해도 검사 시점부터 갇혀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월경 주기가 겹친 점도 스트레스가 됐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E'(Extroversion·외향형)보다는 'I'(Introversion·내향형)에 가깝지만, 내 경우 이것은 외출을 저어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일을 쉬고 약속이 없더라도 매일 콧바람을 한 번씩은 쐬어야 했던 사람에게 자택 격리는 곤욕이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진 못했지만,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잡았던 루틴도 당분간 불가능했다. 다른 출구를 찾아야 했다.
 
내가 택한 최선의 방도는 '일상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 규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아침은 오전 7~8시 사이, 점심은 정오~오후 1시 사이, 저녁은 7시 등 대체로 정해진 시간 내에서 끼니를 챙겼다. 평소 근무에 치이면 아침·점심을 거르거나 종종 '늦점'을 하게 되곤 했는데 나름의 큰 변화였다. 이따금 씨리얼·빵 같은 부식도 먹었지만, 배달 음식은 한 번도 시키지 않았다. 식후엔 비타민과 하벤·코푸시럽 등의 약도 꼬박꼬박 복용했다.
 
틈틈이 간단한 스트레칭도 했다. 눈을 뜨고 나면 팔다리를 먼저 위아래로 펴고 목과 손목·발목을 부드럽게 돌려줬다. 긴 시간을 앉아서 컴퓨터와 씨름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 상 몸이 뻣뻣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하루 내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2~3m 반경으로 제한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홈트'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몇 가지 동작들을 하고 나면 메마른 고목나무 같았던 몸에 생기가 돌았다.
 
확진자들을 괴롭게 하는 자가격리의 또다른 이름은 '무기력함'이다. 누군가는 기운이 없고 자꾸 처지는 것도 코로나19의 한 증상이라고 했다. 태생이 '집순이'도 아닌 데다 타의로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 역시 다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때로는 내가 오미크론에 걸려서인지, 그저 격리로 인해 힘든 것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짙어질 때면 창문을 열고 수시로 환기를 했다. 또 좋아하는 노래들을 BGM으로 깔아두거나 나중을 기약하며 책갈피를 꽂아놨던 팟캐스트, 라디오를 많이 들은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재택으로 근무를 이어간 것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실감을 줬다. 증상이 가벼웠기에 가능한 일이다.(물론 원래는 유급 휴가가 원칙이다).

 

3차접종, 감염됐다고 무효 아냐…개인 편차에도 '중증 예방' 체감


지난 17일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받을 당시 건네받은 생활수칙 안내문. 검사대상자는 결과가 음성으로 확인되기까지 자택 격리가 원칙이다. 이은지 기자
확진일부터 해제일까지 나는 시종 증상이 희미한 축에 속했다. 가벼운 코막힘과 두통, 무기력함 외 오미크론의 대표적 증상으로 알려진 인후통과 기침·콧물·발열 등은 없었다.
 
한 달 전 3차접종(추가접종)을 마쳤던 점도 영향이 없지 않았을 거라 판단한다. 작년 10월 중순 화이자로 기본접종을 완료한 나는 복지부 출입기자답게(?) 3개월이 도래하자마자 서둘러 부스터샷을 맞았다. 어리석게도 내가 걸릴 거란 생각은 못했으나, 그때도 백신이 감염을 100% 막아주리라 믿어서 맞은 것은 아니었다.
 
한때 '집단 면역'(Herd immunity)이 코로나19 종식의 전제로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한 가정임을 안다. 델타 변이 출현 이후부터 백신 회피능력이 더 강해진 오미크론에 이르기까지 접종 목표는 감염 자체보다 중증·사망 차단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최근 2차접종 석 달 이상이 지난 한 친구가 독감을 흠뻑 앓듯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추가접종의 효능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 면역력에 따른 편차도 있을 것이다.
 
'하루 2회' 모니터를 받는 집중관리군이었던 엄마는 사뭇 양상이 달랐다. 같은 3차 접종자여도 고령층이라는 차이가 작용했던 것 같다(엄마는 아스트라제네카(AZ)로 1·2차 접종을 받고 화이자로 추가접종을 받았다). 격리 초기보다 중반으로 갈수록 인후통과 가래가 심해졌다. 목에 무언가 걸리는 듯한 통증이 있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가래를 뱉어내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지속됐다. 다만, 기침이나 열은 별로 없었다.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아졌던 시점에 몸이 가장 힘드셨던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격리 5일차였던 21일이 절정이었다. 아침과 낮 시간대에 비대면으로 상태를 살핀 의료진은 엄마의 쉰 목소리를 염려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격리해제 시점이 조금 더 늦춰질 수도 있다고도 했다. 산소포화도는 96~97%을 유지했고 겨드랑이 등으로 잰 체온도 36.5~36.7도로 정상이었다. 인후통과 가래도 다행히 해제일이 다가오면서 차츰 호전됐다. 확진 초반 처방받은 1주일 치 약과 함께 따뜻한 물이나 차를 자주 마신 것, 잘 먹고 숙면을 오래 취한 것 등이 주효했다.
 
최초 확진자인 동생도 검사 전 있었던 증상들은 대부분 해소됐다. 처음엔 가슴께가 조금 뜨거웠고, 목은 스크래치가 난 것처럼 아팠단다. 감염기간 많이 나왔던 콧물과 약간의 기침도 사라졌다. 그가 하루 먼저 격리에서 풀려나자마자 한 일은 엉뚱하게도 선별진료소를 찾아 다시 신속항원검사를 받은 것이었다. 첫 신속검사서 양성이 떴던 동생은 두 번째 검사에서야 '빨간색 한 줄'을 받아들고 비로소 후련함을 내보였다. "나는 이제 자유다."

 

자가격리가 남겨준 것들…'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이한형 기자
가족과 거주공간을 분리했던 확진자들에겐 여남은 과제가 주어진다. 집 안 곳곳을 소독하고 청소하는 일이다. 우리는 안방 침대 시트와 이불·베개 커버를 빨았고 화장실과 방문 손잡이·식탁 등 손이 자주 닿는 곳들을 소독제로 꼼꼼히 닦았다. 1주일 동안 쌓인 쓰레기들과 분리수거물도 소독해 배출해야 했다.
 
동거인들이 줄줄이 확진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빠는 격리 마지막 날 PCR 검사를 통해 다시 '음성'을 확인받았다. 일부 숙박업소는 진단검사를 요청받은 접촉자의 경우 음성이라도 방을 내줄 수 없다며 문자메시지를 보여 달라고 해 숙소를 구하는 일도 사실 녹록치 않았다. 건강 문제로 시술을 받으신 이튿날 곧바로 집을 떠나시게 한 일은 두고두고 죄송할 것 같다. 며칠간은 만일을 대비해 서로 거리를 두고 조심하기로 했다. 외부활동도 최대한 자제할 생각이다.
 
격리기간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우리가 독립된 개인으로서만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장을 볼 수 없는 처자식을 위해 아빠는 삼계탕과 생필품을 날랐고, 이모는 '보양식을 먹어야 한다'며 문 앞에 갈비탕을 살포시 두고 가셨다. 이밖에 품앗이처럼 이어진 도움의 손길에 많은 빚을 졌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준 친구와 지인들도 있었다. 우연찮게 비슷한 시기 확진된 이들과는 말 그대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눴다. 서로 '슈퍼 항체'가 생겼을 거라며 웃음 지었고, 잘 견뎠다며 주고받은 위로로 마음을 데웠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할 것 같다며 오일밤을 보내준 선배, 회복을 기도해준 주변 이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감염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치유의 끈이 되기도 하는 불완전한 존재들. 세상에 나와 완벽하게 무관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직접 통과했기에 더 무겁게 체감한 부분도 있다. '1주일 격리'라는 지침은 동일해도 확진자들이 저마다 처한 상황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나와 동생에게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면, 아빠가 따로 지낼 외부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면,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아마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난해 "거리에서 자가격리를 한 홈리스도 있다"는 한 활동가의 모순된 말도 떠올랐다. 되도록 '안전한 집에 머물러 달라'는 지난 2년간 방역당국이 되풀이해온 당부지만, 집이 안전과 동의어일 수 없는 이들의 얘기는 충분히 발화(發話) 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의 재택치료가 더 눈을 돌려야만 하는 지점이다.
 
나의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교훈도 얻었다. 감정적으로는 예민한 반면 몸의 변화에 둔감한 나와 달리 동생은 이 방면에 훨씬 더 민감한 사람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먼저 검사에 나서준 덕에 '숨은 감염자'를 면할 수 있었다.

매일 20만에 가까운 확진자와 수십 만의 격리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 번도 코로나를 겪지 않고 대유행을 지날 확률은 희박하다. 확진된 이는 괜한 죄책감을 갖지 말기를, 또는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란 착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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