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 배치를 공식화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했다는 판단에 따라 24일로 예정됐던 미·러 외교장관 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당연히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사라져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지는 모양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 등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 서방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하는가하면 해외 자산도 동결하는 등 돈줄을 압박하고 나섰다.
또 추가 제재를 이어나가겠다는 으름장과 동시에 유럽연합 나토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 지원은 물론 러시아 주변국으로 병력을 증강하는 등 맞대응하고 있다.
이미 돈바스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 군과 친 러시아 반군이 포격을 주고받는 등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 '총성'은 울렸고 앞으로 무력 충돌이 단기 국지전으로 한정 될 것인지 아니면 장기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가 남겨진 듯하다.
어느 쪽이든 전쟁발발이 현실화되고 있어 이번 사태가 전 세계와 국내에 미칠 파장을 우려할 수밖에 없게 됐다.
현실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5%와 0.1% 수준으로 크지 않아 단기적으로 볼 때 직접적인 영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강도 높은 제재를 취해 나갈 경우 에너지 수급과 원자재 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상 이번 사태가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러시아는 전 세계 원유의 12%, 천연가스의 25%를 생산하는데 절반 이상을 유럽에 수출한다.
두 나라는 주요한 곡물 수출국으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공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러시아의 침공이 본격화할 경우 원자재 공급 차질을 초래해 가격이 대폭 오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 이후 국제유가는 이미 배럴당 90달러 이상을 찍는 등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조만간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로서는 유가 급등 시 전 산업계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정부는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다른 국가로부터 대체 물량을 확보하고 비축유를 방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에 그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몰고 올 또 다른 중요한 파장은 이른바 '신 냉전' 체제가 냉전 붕괴 30여 년 만에 다시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의 군사 충돌 가능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유럽의 질서를 1990년대 이전 수준으로 돌려 세계 맹주였던 냉전시대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야심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에도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러시아에 벌어진 가장 큰 재앙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냉전 체제 붕괴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신 세계질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 강행으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세계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의 부상은 호시탐탐 부활의 기회를 엿보던 푸틴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되고 있다.
그런 푸틴에게 러시아와 역사적인 뿌리가 같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친 서방 정권의 나토 가입 추진은 자신의 야심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제공한 셈이다.
실제로 푸틴과 시진핑 중국 주석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가진 정상회담에서 나토 확장에 대해 "미국과 그 동맹국이 러시아와 중국의 안보에 엄중한 위협을 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과의 패권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과거 위상을 회복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양국 관계는 유사 이래 가장 밀착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가 당초 미국이 공개한 침공 예상일을 넘기고 베이징동계올림픽 폐막직후 군사행동에 나선 것도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사태는 단순히 우크라이나 내 분쟁을 넘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대 러시아·중국'의 맞대결로 '신 냉전' 체제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중대사건이다.
'신 냉전' 체제의 도래는 냉전의 유산으로 분단된 채 남아있는 한반도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가뜩이나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틈바구니에서 각종 현안이 발생할 때 마다 번번이 선택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이번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자칫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그 결과 신 냉전 체제가 고착화할 경우 분단 상태인 한반도 역시 '화약고'로 부각될 수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장기 전면전으로 확산하기 보단 단기 국지전으로 전개하다 크림반도 합병처럼 어느 국면에서 합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작은 불씨하나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듯이 이번 사태 역시 단순히 영토 분쟁을 넘어 신 냉전 시대의 도래라는 성격을 띠고 있어 결과를 낙관적으로만 보기 어렵다.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냉전'이든 패권을 내건 '신 냉전'이든 전쟁은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양측 모두 명심하고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