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22 베이징 올림픽 취재 뒤에 담긴 B급 에피소드, 노컷뉴스 '베이징 레터'로 확인하세요.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길었던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출장을 마치고 무사귀환했습니다.
지난 1월 31일 중국에 입국해 지난 20일 올림픽 폐막. 그리고 그제 출국. 중국 베이징에서 21박 22일 일정이 끝났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기쁠 수가 없네요.
오늘 레터는 폐쇄 루프 탈출기, 마지막 베이징 레터입니다.
제가 탄 비행기는 전세기이자 직항기입니다. 마지막 선수단과 함께 21일 오후 3시 출국하는 일정이었죠. 그러나 코로나19로 방역 등의 이유로 6시간 전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안내가 있었습니다.
짐을 싸고 호텔 숙소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올랐습니다. 경기장에 갈 때는 깐깐하게 했던 가방 검사도 오늘은 없었습니다. 급 친절해진 호텔은 공항에 가면 먹을 것이 전혀 없다며 물과 음료, 샌드위치를 줬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베이징 시내 도로는 그동안 제가 알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늘어난 차로 도로가 꽉 막혔죠. 마침 출근 시간이라 더 정체가 심한 듯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 느낌이었죠.
하지만 버스 전용차로는 뻥 뚫려 있었습니다. 명절 때 버스 전용차로를 타듯 도로를 빠져나갔습니다. 중간에 전용차로 위반을 잡는 공안의 모습까지 비슷했죠.
공항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자 버스는 시원시원하게 달렸습니다. 공항은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공항은 떠나려는 각국 선수단으로 붐볐습니다. 우리 선수들도 있었죠.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큰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올림픽에 참여한 사람들 이외에는 없었죠.
공항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편의점도 없었죠. 왜 호텔에서 샌드위치를 줬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긴 기다림에 일부 선수단은 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수 차례 검역대를 통과한 끝에 출국 비행기 앞에 섰습니다.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뒤에 온 사람들은 2시간이 걸리기도 했다더군요.)
하지만 너무 일찍 온 탓에 긴 기다림이 이어졌죠. 올림픽에 참여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면세점 역시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심지어 음료를 파는 자판기마저 없어서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기다림과의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저마다 무료함을 달랬죠. 잠을 자기도 하고 밀렸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캐나다 선수들은 카드 놀이를 했고 러시아 선수들은 공항에서 조깅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5시간을 기다려 비행기에 올랐고 다들 기쁜 마음으로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참고로 선수단과 취재진은 자가격리 면제서 발급을 받고 귀국했습니다. 폐쇄 루프에서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해서 가능했습니다. 그래도 귀국 후 일주일 동안은 외출을 자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해외 입국자 시스템이 가동됐습니다. 사전에 PCR 검사 음성 확인서 등을 확인한 뒤 격리 시설을 배정 받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취재진이 어느 격리 시설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선수단은 김포, 취재진은 인천이란 목걸이를 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출구로 나왔습니다. 공항 입국장에는 선수단 본진과 함께 온 터라 선수단을 보려는 취재진과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가운데 곧바로 버스를 타고 격리 시설로 이동했습니다. 버스에 오른 뒤에야 목적지를 알게 됐습니다.
취재진이 머무는 격리 시설은 인천에 있는 두 곳의 호텔이었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호텔이고 격리 시설로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PCR 검사를 새로 하고 하룻밤을 대기한 뒤 최종 음성 결과가 나오면 집으로 복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격리 시설에서 PCR 검사를 받고 하루를 머문 뒤 퇴소합니다. 이후 자택에서 자가 진단 앱을 깔고 이틀 간격으로 두 번의 자가 진단 검사, 7일째 관할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으면 정말로 격리가 해제됩니다.
배달 음식은 금지된다고 했습니다. CCTV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친절한 방역 요원들이 찾아간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죠.
설명을 듣고 PCR 검사 후 각각 배정된 방으로 갔습니다. 여기저기 폴리스 라인이 붙어 있었습니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쓰던 그 폴리스 라인 말이죠. 원래라면 나름 고급 호텔인데 갑자기 우중충한 느낌까지 들더라고요.
저녁으로 도시락을 받았습니다.
외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만큼 샌드위치, 샐러드, 물 등이 든 풍성한 도시락이었죠. 그렇게 방으로 들어오니 대략 오후 9시였습니다. 오전 8시 중국 호텔에서 나와서 오후 9시 한국 호텔로 들어왔네요.
제일 먼저 한 일은 밥 먹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제 신상 정보를 털어갔던 올림픽 관련 중국 앱들을 삭제하는 거였죠. 마음 같아서는 핸드폰과 노트북을 초기화하고 싶었지만 일이 너무 커지는 터라 삭제로 만족했습니다.
그렇게 지쳐서 잠든 뒤 22일 오전 7시 30분. 호텔 전화가 울렸습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습니다. 퇴실해도 됩니다."
드디어 집으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저기서 체크 아웃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질 수 없었죠. 1층으로 가니 이미 준비를 마친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런데, 그냥 집에 가는 것이 아니더군요. 셔틀버스는 다시 인천공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도 바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가서 목적지와 교통 수단 별로 다른 스티커를 받고 출발을 했습니다.
저는 방역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택시에 오르니 PCR 검사 결과서를 제출해 달라고 했습니다. 관련 서류를 보여준 뒤에야 택시는 출발했습니다. 기사님은 어서 집에 가고 싶은 제 마음을 아시는지 거침없이 질주하셨고 무사히 집으로 도착했습니다.
21박 22일, 더하기 1일의 베이징 출장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서툴고, 어설펐고, 낯설었지만 꾸역꾸역 시간은 갔고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줬네요.
'올림픽처럼 큰 국제 대회는 꼭 경험해봐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동시에 '폐쇄 루프로 진행하는 국제 대회도 경험보실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감히(?) 남깁니다.
그동안 올림픽 기간 매일 볼품없던 B급 올림픽 취재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