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재판부터 판결이 엇갈리는 등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해석의 부침이 심한 사건이었다. 최종심인 대법원은 1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의견'이고 이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文은 공산주의자? '사실'이냐, '의견'이냐
고 전 이사장은 2013년 1월 한 보수단체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을 가리켜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발언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부림 사건을 '공산주의 운동'으로 규정한 뒤 이 사건 관계자들을 변호한 문 대통령도 '공산주의자'라는 게 고 전 이사장의 논리였다. 파문이 일자 문 대통령은 2015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2년 만인 2017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1심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의 사실 여부와 고의로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따졌다. 재판부는 "'자유민주주의'나 '공산주의'는 수많은 개념 요소들을 내재적으로 포섭한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여부를 따지려면 대다수 국민이 '공산주의'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가져야 하는데,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와 전후 세대는 '공산주의'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고 전 이사장의 자료나 진술 등을 보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믿어 온 체제의 유지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은 단순한 의견표명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구체화된 허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며 고 전 이사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문 대통령을 가리켜 공산주의자라고 한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을 '의견'이라고 본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정반대의 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어 "동족상잔과 이념 갈등 등에 비춰 보면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며 "발언 내용의 중대성과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된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이념 갈등 상황에 비춰보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산주의자'를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
'공산주의자'가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는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한번 뒤집혔다.또 "고 전 이사장의 발언 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공적 인물인 피해자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견 교환과 논쟁을 통한 검증 과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며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을 폭넓게 해석하면서 '풍요로운 밥상'이라고 비유한 점도 눈에 띈다. 대법원은 "서로 다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다양한 의견은 창의성의 발현이며, 잘 차려진 풍요로운 밥상과 같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해 사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과도한 사법권의 개입 자체를 경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