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레몬 카'는 불량 중고차를 말한다. 달콤한 오렌지처럼 보이지만 먹어보면 쓰디쓴 레몬의 특성에서 따온 말이다.
그런데 '레몬 카'가 중고차 시장에서 오히려 잘 팔린다. 소비자들이 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모른 채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구입하기 때문이다.
1970년 조지 애커로프 교수는 이 '정보의 비대칭'에 의한 '역선택'이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담은 '레몬을 위한 시장(Market for lemon)'이라는 논문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애커로프 교수가 제기한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역선택 현상을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입해 문제 제기를 한 논문이 미국의 유명 학술지 '아시안 퍼스펙티브' 봄호에 실린다.
미국 정치학자 최승환 교수(시카고 일리노이대 종신교수)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레몬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레몬 카'에서 따 온 '레몬 대통령'이란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 뽑은 엉터리 대통령을 말한다.
'레몬 카'를 이용해 특정 국가의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을 분석한 것은 이 논문이 처음이다.
존스홉킨스대학 홈페이지에 사전 공개된 40페이지 분량의 논문은 사례연구와 조사결과, 77편의 참고문헌 등을 바탕으로 한국의 역대 문민 대통령 6명 가운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레몬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그들이 선거운동 때 자신을 민주주의의 진정한 옹호자로 포장한데다 유권자들이 그들의 개인사, 부패, 권위주의적 성향에 접근할 수 없어 진짜 자질을 밝혀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들 2명의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비현실적인 우월감(grandiose)을 가지고 비민주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반면, 나머지 4명의 문민 대통령들은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를 침해할 정도로 정치권력을 오남용하지 않았다는 게 논문의 주장이다.
논문에 따르면 우선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유권자들이 '정직과 청렴을 갖춘 민주적 지도자' 등의 이유로 선호했지만(2011년 갤럽조사) 그는 결국 탄핵을 당하고 뇌물수수, 사기, 배임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으로서의 리더십과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받았지만 취임 직후 비판적 언론사 대표들을 교체하고, 시민사회진영을 질식시키고, 법원과 검찰을 장악했으며 퇴임 후 BBK 스캔들 등으로 감옥에 갔다.
2010년 한국 민주주의 지표 조사에서도 그 때까지 4명의 문민 대통령(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을 '가장 민주적이지 않은 대통령'으로 응답한 사람이 8.86%로 가장 많았다.(김대중 3.78%, 김영삼 2.59%, 노무현 1.69%)
특히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상의 임명권과 해임권을 부당하게 사용해 사법부를 장악하고 그들을 이용해 국가변화를 명분으로 권력을 사유화했다.
2021년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다양성(V-Dem) 프로젝트 조사에서도 6명의 대통령 가운데 대통령의 권한 남용과 직결되는 언론 자유 및 사법부 독립 지수에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왔다.
논문은 특히 이명박 대통령 시절 KBS, MBC, YTN 장악과 광우병 및 4대강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 등을 자세히 소개해 이런 사례가 언론자유 축소에 따른 결과임을 시사했다.
논문은 두 사람이 나란히 비민주적 통치에 익숙했던 이유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시기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이 "나라를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반(半) 민주적 통치가 불가피하다고 믿었고,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와 독재정권이 나라를 가난에서 성공적으로 구해낸 이후 미화됐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은 자신의 현대건설 CEO와 서울시장의 경력을 '한강의 기적'에 초석을 쌓은 박정희의 이미지에 결부시켰고, 박근혜는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어머니를 떠올리는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국모로 그렸다는 것이다.
논문은 특히 박정희 시대 군과 중앙정보부가 했던 역할을 두 대통령은 판, 검사에게 맡겼다고 봤다.
두 대통령이 이들 사법주체를 활용해 '어떻게' 대통령직을 사유화해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는지도 차분히 분석했다.
논문은 이들이 3개의 사법주체(민정수석, 검찰총장, 대법원장)의 임명권과 해임권을 이용해 개인적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을 이들 자리에 기용한 뒤 정치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위기에 처하자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문제를 짚은 PD수첩 방송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해 기소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또 시위로 인해 자신의 정통성이 흔들리자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찰을 이용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소고기 수입반대 시위대와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비현실적 우월감 실현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 제거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하자마자 법원과 검찰을 장악했다. 특히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자신의 측근들을 대검, 법무부, 국정원 등 요직에 기용해 박근혜 대통령의 공적, 사적 업무 처리를 도왔다.
논문은 박 전 대통령이 법원을 확실히 장악한 증거도 풍부하다며 2012년 대선개입 의혹을 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것, 관련된 수사에 대한 축소, 은폐 의혹을 받았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 받은 것을 사례로 제시했다.
아울러 내란 선동, 무장봉기 음모,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던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시 의원이 회의록이 증거가 돼 유죄를 받은 사건도 짚었다.
특히 이석기 의원이 속해있던 통진당이 해산된 것과 관련해서는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며 증거의 과장과 왜곡,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아직까지도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대법원장으로서 스스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로 변신했다"면서 그가 정치적 성향에 따라 법관들을 인사발령 내기 위해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비판을 소개했다.
논문은 사법기관 특히 '권력의 개'라는 오명을 가진 검찰이 제대로 기능과 역할을 했다면 레몬 대통령도 막고, 한국의 민주주의도 후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검찰은 그의 후보시절 BBK와 불법적 관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검찰은 그 사건으로 그를 구속시켰다. 검찰이 대선 전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것이다.
논문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검찰은 정윤회(십장시)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 눈감아 이후 터진 최순실 사건을 방조하는 역할을 했다고 봤다.
특히 우병우 민정수석이 국정개입 의혹 사건을 기물 누설 사건으로 덮어씌워 은폐한 점도 강조했다.
논문 저자 최승환 교수는 결론에서 두 레몬 대통령의 출현이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 제도 때문이라는 지적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다른 4명의 문민 대통령들은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 교수는 왜 레몬 대통령이 탄생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성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권자들이 민주적 통치방식을 존중하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다면 레몬 대통령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들의 (비)민주적 기록을 추적하거나 자질을 평가하는 적당한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법원이나 검찰청 수뇌부를 미국처럼 선거를 통해 선출해 청와대의 잠재적 위법행위를 감독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들의 독단적인 권력행사를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소환제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