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과 김보름의 '베이징 눈물'[베이징 레터]

4일 중국 베이징 국립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김보름이 훈련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편집자주] 2022 베이징 올림픽 취재 뒤에 담긴 B급 에피소드, 노컷뉴스 '베이징 레터'로 확인하세요. 
   
여러분은 최근 언제 눈물을 흘렸나요?
   
슬퍼서, 아파서, 또는 기뻐서 우셨을지 모르겠네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도 여러 눈물이 있었습니다. 감동과 환희, 아쉬움과 안타까움, 고통과 통증.
   
베이징에서 우리 태극 전사들도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중계 카메라에 선수들이 우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눈물마다 의미는 달랐죠.
   
경기 후 중계 인터뷰가 끝나면 선수들은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합니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시간 제약이 있는 중계 때 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죠.
   
선수들도 취재진도 참 힘듭니다. 좋은 상황이면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상황이면 무슨 상황이 발생했는지 질문을 해야만 하죠. 선수들도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선수와 취재진의 숙명이죠.

오늘 레터는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울렸던 두 명의 선수 이야깁니다.
   

■얼음공주에서 울보가 된 최민정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최민정이 11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

여자 쇼트트랙 간판 최민정(성남시청)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마음고생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심석희(서울시청)의 동료 비방 논란과 고의 충돌 의혹 때문이었죠. 2018 평창올림픽 당시 심석희의 행동에 2021년 체육계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쉽게 경기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심지어 심석희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소송도 불사했죠. 심석희가 최종 합류는 못 했지만 논란의 피해자인 최민정의 가슴앓이는 끝까지 이어졌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잡은 최민정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 중 최다입니다.
   
심석희(왼쪽)과 최민정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전에서 부딪혀 넘어진 뒤 일어난 모습. 이한형 기자

그런 최민정이 취재진을 울린 날이 있습니다.

최민정 지난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쇼트트랙 여자 500m 8강전 3조 경기에서 결승선을 두 바퀴를 앞두고 넘어져 4위로 퇴장했습니다. 대회 초반, 아직 최민정의 메달이 나오기 전이었죠.
   
여자 500m는 우리의 주력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최민정은 그것을 깨고 싶어 했습니다. 경기 당일도 경기장에 가장 먼저 들어와 빙질을 살폈죠. 그래서 더욱 아쉬웠을 것입니다.
   
최민정이 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500m 예선전에서 넘어진 뒤 아쉬워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최민정이 믹스트존으로 걸어왔습니다. 최민정은 컨디션도 문제가 없었고 빙질도 괜찮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넘어진 것에 더욱 아쉬워했습니다.
   
안타까워하는 최민정에 취재진이 '주력 종목이 아니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최민정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저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게 좀 이 결과로 이어지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슬펐습니다. 누구보다 최민정의 상황을 잘 알았기 때문이죠. 취재진은 최민정에게 "힘내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김보름, 넌 이미 금메달이야


   
6일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박지우(왼쪽부터), 김현영, 김보름이 훈련 중 대화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대회 기간 계속 믹스트존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몇몇 선수들이 취재진의 가슴을 파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했고 그래도 가까스로 울음을 참아왔습니다.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강원도청)의 경기 인터뷰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김보름은 2018 평창 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김보름은 은메달을 땄지만 오히려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는 경기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관중은 물론 온 국민들을 향해 큰절을 했습니다.
   
바로 왕따 주행 논란 때문이었죠.
   
김보름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뒤, 관중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3명이 함께 뛰는 팀 추월에서 김보름은 박지우(강원도청) 노선영과 함께 나섰지만 노선영이 크게 뒤처졌고 큰 격차를 남기며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 방송사 중계진은 강한 어조로 비판했고 김보름에 대한 비난 분위기는 극에 달했죠. 팬들도 김보름을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김보름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죠.
   
사실 다른 선수에게 피하를 준 것은 오히려 노선영이었습니다. 김보름이 피해자였죠. 4년이라는 모진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에서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의 당사자인 노선영(왼쪽)과 김보름. 이한형 기자

지난 16일 마침내 법원에선 김보름이 노선영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노선영이 김보름에 3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4년이 걸렸지만 김보름의 경기 직전 나온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김보름은 19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오벌(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8분16초81로 5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누구보다 할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김보름이 믹스트존에 왔을 때는 이미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습니다.
   
김보름이 19일 중국 베이징 내셔털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여자 결승전에서 역주한 뒤 숨을 고르고 있다. 박종민 기자

"제가 올림픽 준비하면서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아무도 나를 응원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경기 전에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정말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시고 소셜미디어(SNS) 메시지를 너무 많이 주셔서 그런 메시지 하나하나 저에게는 더 큰 힘이 됐습니다."
   
김보름은 억지로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담담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죠. 그동안 너무 우는 모습을 보여줘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줬고 그 덕분에 베이징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김보름. 취재진은 김보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응원 메시지 하나를 뽑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김보름은 잠시 고민했습니다. 왜냐면 메시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일부러 제가 하나하나 다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들이 너무 많았는데… '김보름은 이미 금메달입니다' 그런 말이 저에게 힘이 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음 질문을 해서는 안됐습니다. 그 질문이 아니었다면 김보름도, 취재진도 울지 않았을 것입니다.
   
"4년을 버틴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취재진)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울먹이고 있다. 이한형 기자

"사실 힘들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저는 힘내서 이겨내려고 했고, 혼자 무너질 때도 많았는데 버텨줘서 수고했다고…그래도 4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주고 이겨내 줘서 고맙다고, 이제 편하게 웃으면서 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김보름)
   
김보름의 눈물과 취재진의 눈물을 끝으로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제 마지막 믹스트존 인터뷰도 끝이 났습니다. 최민정, 김보름 선수 정말 고생많았어요. 이제 한국에선 울지 말고 꽃길만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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