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러시아 코치' 멘붕 발리예바에 "왜 포기했어" 따져[베이징올림픽]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투트베리제 코치(왼쪽부터)와 도핑 논란에 휩싸인 카밀라 발리예바. 박종민 기자

금지 약물 복용 적발에도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출전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카밀라 발리예바(15).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다.

발리예바는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피겨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141.93점을 받았다. 기술점수(TES) 73.31점, 예술점수(PCS) 70.62점으로 프리 스케이팅 25명 중 5위에 자리했다.

15일 발리예바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82.16점으로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프리 스케이팅 부진으로 총점은 224.09점, 4위에 그쳐 노 메달에 머물렀다. 점프에서 세 차례나 넘어지는 등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거센 비난에 흔들린 모습이었다. 한국의 방송 3사와 미국 NBC 등 중계 해설진은 발리예바의 쇼트 프로그램 경기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발리예바의 도핑 스캔들을 준열하게 비판하는 취지였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 여자 싱글 챔피언 타라 리핀스키는 "이 경기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전 세계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리예바는 연기를 제대로 펼치기 어려웠다. 경기 후 발리예바는 눈물을 쏟았고, 결과가 나온 뒤 코치들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하지만 발리예바를 지도했던 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는 냉정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투트베리제 코치는 프리 스케이팅 연기를 마치고 돌아온 발리예바에게 "왜 포기했나? 왜 경쟁을 그만뒀나? 설명해달라"고 따져 물었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카밀라 발리예바가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마치자 투트베리제 코치(왼쪽)가 다가가 말을 걸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


물론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점수를 기다리는 동안 우는 발리예바에 어깨에 팔을 두르는 모습도 보이긴 했다. 그러나 투트베리제 코치는 경기 후 기자 회견에서 발리예바에 대해 "내가 생각한 것은 본인에게 직접 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발리예바의 도핑 논란은 선수 본인도 문제지만 코치, 의사 등 주변 관계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1980년대 올림픽 여자 싱글 2연패를 달성한 카타리나 비트(독일)는 "이번 사건에 책임 있는 어른들은 모두 영원히 스포츠에서 추방을 당해야 한다"면서 "이 어른들이 알고도 발리예바에게 이런 일을 한 게 사실이라면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했다. 아직 어린 선수가 금지 약물을 어떻게 알고 복용할 수 있었겠냐는 것인데 사실상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다는 의견이다.

투트베리제 코치는 그 책임론의 중심에 있다. 투트베리제 코치는 러시아 선수들을 톱 랭커로 키운 능력 있는 지도자로 꼽힌다. 발리예바는 물론 이번 대회 금, 은메달을 따낸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얼음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엄격한 지도 방법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발리예바의 금지 약물 복용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날 투트베리제 코치는 은메달을 따낸 알렉산드라 트루소바(ROC)에게 곤혹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했다. 트루소바가 여자 선수 최초로 5번이나 4회전 점프에 성공했지만 금메달을 받지 못하자 뿔이 난 것. 오열한 트루소바는 위로하는 투트베리제 코치를 밀어내며 "다시 스케이트를 하지 않겠다"고 절규했다. 이후 트루소바는 감정을 추슬러 불참하겠다던 시상식에도 나서긴 했지만 발리예바까지 제자들의 씁쓸한 모습을 봐야 했던 투트베리제 코치였다.

ROC는 이번 대회 여자 싱글 금, 은메달을 휩쓸며 소기의 목적을 이뤘지만 단체전 금메달 수여 보류 등 상처도 많았다. 트트베리제 코치는 "머나먼 여정이었고 올림픽이 끝난 것도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꿈을 꾸는 것 같다"면서 "2026년 올림픽은 정리를 좀 한 뒤 향후 결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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