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성남시청)은 준준결승부터 누구보다 빨랐고 남들과는 달랐다.
16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준준결승 1조 경기.
최민정은 4바퀴가 남을 때까지 뒤에서 여유있게 레이스를 펼쳤다. 이후 갑자기 속도를 끌어올리자 최민정의 자리는 순식간에 맨 앞에 위치했고 2위와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최민정은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웃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남은 바퀴수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는지 불만섞인 표정과 제스처를 보였다.
이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마치 최민정이 함께 뛴 선수들을 대표해 혼자 불만을 제기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민정이 불만을 나타낸 순간 뒤에 있는 선수들은 여전히 레이스를 펼치느라 바빴다. 그만큼 최민정과 도전자들의 기량 차이가 컸다.
쇼트트랙 여자 1500m 종목의 세계기록 보유자 최민정의 진가는 준결승 무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최민정은 한위퉁과 장위팅 등 중국 선수 2명과 함께 뛰었다. 기록이 아닌 순위로 승부를 가리는 쇼트트랙에서는 한 조에 같은 나라 선수 2명이 출전할 경우 특별한 작전 구상이 가능하다.
최민정은 아마도 중국 선수들에게는 경계대상 1순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민정은 그들이 견제 작전을 시도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최민정은 레이스 막판까지 경쟁 구도에서 보이지 않았다. 6위 자리에서 차분하게 달렸기 때문이다. 뒤에서 꽁꽁 숨었다.
4바퀴가 남았을 때까지도 최민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최민정을 응원하며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조바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최민정은 3바퀴가 남은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달렸다.
그가 아웃코스를 달리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추월이 이뤄졌다. 최민정은 속도를 끌어올린 뒤 한 바퀴를 채 달리기도 전에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민정은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2위 그룹과의 격차를 크게 벌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최민정은 2분16초831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올림픽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준준결승과 준결승 모두 경기 후 비디오 판독은 최민정과 관련이 없었다. 추월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충돌도 없었고 결승선 앞에서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이어 열린 여자 1500m 결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열린 쇼트트랙의 마지막 세부 종목 경기였다.
최민정은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동료 이유빈(연세대)과 함께 결승 스타트 라인에 섰다.
레이스 초반 이유빈이 선두를, 최민정이 2위 자리를 지켰다. 한위퉁과 수잔 슐팅(네덜란드)가 1-2위로 치고 나갔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의 속도는 줄었고 그 사이 최민정은 다시 선두가 됐다.
최민정은 3바퀴를 남기고 다시 속도를 올렸다. 순식간에 차이가 벌어졌다. 2위 그룹이 추월을 시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벌어졌다.
이전과는 전략이 달랐다. 체력 소모가 많은 선두 자리에서 레이스를 끌고 갔음에도 막판에 압도적인 스퍼트로 끝까지 1위 자리를 지켜냈다.
최민정은 2분17초789의 기록으로 대망의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함께 뛴 이유빈은 6위(2분18초825)에 올랐다.
한국은 이 종목에서 나온 역대 올림픽 금메달 6개 가운데 4개를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 중 2개를 최민정 혼자 차지했다. 나머지 2개는 중국의 몫이다.
최민정은 여자 1000m 은메달, 여자 계주 은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 자신의 세 번째 메달이자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황대헌에 이어 한국 선수단의 대회 두 번째 금메달이기도 하다.
4년 전 평창 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던 최민정은 자신의 통산 올림픽 금메달수를 3개로 늘렸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