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상태는 괜찮지만 마음은 지쳤다"는 도핑 논란의 주인공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가 압도적인 기량으로 쇼트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발리예바는 15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44.51점, 예술점수(PCS) 37.65점으로 합계 82.16점을 기록해 전체 출전선수 30명 중 1위에 올랐다.
이로써 상위 24명에게 주어지는 프리스케이팅 출전권을 확보한 발리예바는 오는 17일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발리예바는 만 16세의 어린 나이에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로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다.
하지만 도핑 논란 때문에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에 출전 여부가 최종 결정됐다.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선수권 대회 때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였다.
이 결과는 ROC가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한 다음날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에 통보됐다.
RUSADA는 발리예바에게 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가 철회했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발리예바의 손을 들어줬다. 도핑 논란에 휩싸인 선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한 것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를 비롯한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CAS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한 가운데 은반 위에 선 발리예바는 초반 트리플 악셀 점프 이후 착지 과정에서 실수를 범했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자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발리예바는 연기를 마친 뒤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잠시 눈물을 훔쳤다. 자신의 점수를 확인한 뒤에는 TV 중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편, 다수의 선수들이 발리예바의 출전과 관련한 올림픽뉴스 서비스의 질문에 "내 연기에 집중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는 CAS의 결정에 불만과 아쉬움을 나타냈다.
에바-로타 키부스(에스토니아)는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가 경기에 나선다?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리아 벨(미국)은 "올림픽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 나는 스포츠는 깨끗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지해왔고 앞으로도 지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IOC는 CAS의 결정에 반발해 발리예바가 메달을 획득할 경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시상식을 개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발리예바가 프리스케이팅 진출권이 주어지는 상위 24위(총 30명)에 포함될 경우 쇼트프로그램 25위 선수에게도 프리스케이팅 출전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
IOC와 ISU 모두 발리예바의 도핑 의혹이 명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그를 '투명인간'처럼 여기겠다는 것이다.
엘리스카 브레지노바(체코)는 "(발리예바의 출전 자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다만 1명의 선수가 추가로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합계 점수 56.97점을 기록한 제니 사아리넨(핀란드)은 25위로 프리스케이팅 출전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