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일대에 자리 잡은 사회복지법인 베데스다를 설립한 김상철(91) 전 대표이사.
법인이 아닌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그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장애인 아이들을 내 자식 돌보듯이 하며 일생을 바쳤는데, 지금 이렇게 억울한 입장이 돼도 아무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와 아내 고(故) 유옥주 원장은 지난 1965년 부산 대저동에 터를 잡고 시각 장애인 등을 돌보는 활동을 시작했다. 장애인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팽배하던 시절, 이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남편은 농사를 짓고 아내는 뜨개질로 돈을 모아 장애아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공부와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
이들의 뼈를 깎는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베데스다는 점점 공간과 인원이 커졌고, 현재는 장애인 거주시설과 특수학교,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 중증 장애인 거주시설 등을 갖춘 지역사회 대표 사회복지법인으로 자리 잡았다.
법인의 실무 운영은 베데스다원 원장이었던 아내 유씨가 도맡아 했다. 김씨는 예전처럼 장애아를 돌보고, 시설을 고치고,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대표이사였다.
평온했던 법인 상황 바꾼 한 장의 '약정서'
하지만 김씨 내외는 점차 연로하면서 향후 법인 운영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는데, 주변의 추천 등을 참고해 지난 2017년 부산의 한 대형 교회에 운영을 맡기기로 하고 이들과 약정서를 체결했다.
아내 유 전 원장과 교회 담임목사 A씨 간의 약정서를 보면, 설립자 측이 법인 운영권을 이양하는 조건으로 교회 측은 업무용 차량이나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설립자 가족을 최대한 예우하며, 약정을 위반하면 계약을 해지하도록 했다.
김씨 가족은 그동안 이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교회는 보통의 사업체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았다. 기관을 넘겨준 뒤 우리는 완전히 배제됐다"면서, "아무것도 받은 것 없이 일생을 바쳤는데,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줄 필요 없는 부자인 것처럼 여겼고 가족을 둘러싼 온갖 거짓이 난무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 가족이 법인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결심한 건 지난 2020년 유씨가 사망한 뒤 법인으로부터 받은 내용증명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법인 측은 수차례 내용증명을 통해 "직원 숙소(사택)에 있는 개인 물건을 자진해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이 짐은 김씨 가족이 베데스다에 거주할 당시 쓰던 물건들로, 사택은 설립자 김씨에게는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고향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김씨의 유일한 딸 김모(60)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약정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자 법인 측은 '법인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고, 알 권리도 없다'고 무시했고, 심지어 가족이 평생을 바친 공간을 찾지도 못하게 막아섰다"며 "결국 짐을 빼라는 내용증명까지 받자 화가 난 아버지가 법인을 되찾자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유옥주 전 원장)는 생전에 법인을 교회에 넘긴 걸 후회하면서, 병상에서도 법인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러는 와중에도 약속했던 병원비는 중환자실로 옮긴 뒤 비용이 비싸지자 들어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인 돌려달라" vs "안 된다" 법정 다툼
설립자와 법인 양측은 현재 법정에서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설립자 측은 지난 2017년 이뤄진 약정이 운영권 '위탁'에 대한 약정이었으며, 상대방이 약정 내용을 지키지 않았고 약정 당시 유씨의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다는 등 이유를 들어 법인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인 측은 법인 위탁이 아닌 '양도'가 이뤄졌으며, 약정 내용도 지키고 있는 상황인데 오히려 설립자의 딸이 설립자의 생전 뜻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데스다 법인 이사장 B씨는 "기관만 교회에 위탁한 게 아니라, 법인 이사진까지 모두 교체된 양도였다"며 "고 유옥주 원장은 생전에 법인을 돈을 받고 넘긴 게 아니라는 점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약정에 대해서는 "토지는 교회에서 십수 억원을 들여 구매했고, 아직 새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무적인 문제로 법인 소유가 아닌 교회 소유로 둔 상태일 뿐"이라며 "설립자용 업무 차량도 구매했고, 병원 진료비도 영수증이 오면 오는 대로 다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또 설립자 김씨에 대한 예우도 충분히 할 의사가 있지만, 설립자 딸의 개입으로 사태가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관련 법에 따라 설립자가 법인 시설에 거주를 못 하게 되면서 김상철 대표이사가 외부로 이주했는데, 이후 오랜 기간 방치된 짐 때문에 시설 활용을 전혀 못 하고 있어 옮겨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며 "별도로 김 대표는 지금이라도 모실 방법을 찾고 있지만, 오히려 설립자의 딸이 '법인을 되찾겠다'고 공언하면서 출입을 중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딸 김씨는 유옥주 이사장이 약정 당시 섬망 증세가 있었다거나 치매 증상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유 이사장의 모습을 기억하는 직원들은 사실과 다른 주장에 모두 분노했다"고 덧붙였다.
주민 김모(70대)씨는 "초기에 맹아학원으로 시작할 때 설립자 부부가 가정이 어려워 미국에서 원조도 받는 등 고생을 많이 했고 다른 주민들도 그 모습을 기억한다"며 "설립자가 자기가 세운 공간에 못 들어간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이유야 어찌 됐건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