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개막식 참석은 패착이었다. 개막식에서 55개 소수민족을 대표해 조선족 여성이 한복을 입고 나온 줄을 몰랐다. 깃발 게양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통해 베이징에서 펼쳐진 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이 나온 장면을 본 한국에서는 그때부터 난리가 난 모양이다.
하지만 기자가 개막식장에서 한복을 입고 나온 조선족 여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개막식 행사가 끝나고 행사 참가자들이 운동장으로 모두 나와 흥겹게 뛰놀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을 분명히 봤다.
그런데 기자생활 25년이 다 돼가는 데도 여전히 기자로서의 자질이나 감이 부족한 것인지 개막식에 한복을 입고 등장한 여성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조선족을 대표해서 나왔구나, 괜찮네'하는 정도였지 한복 논란으로 번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복이 특이하기는 했다. 북한이나 중국 조선족들이 입는 한복보다는 한국에서 입는 한복 양식이었다. 이마저도 중국의 조선족들도 이제는 북한이 아닌 한국의 영향을 받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조선족 여성이 입고 나온 한복이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반중 정서로 폭발한지 거의 열흘이 지나고 있다. 이 열흘 사이에 온라인은 반중으로 달구어졌고 대학교수, 대선 주자, 국회의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심지어 주한중국대사관까지 논란에 뛰어 들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개막식 현장에 있었던 기자로서 이 과정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왈가왈부하기도 그렇고 한국과 한국인,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중계방송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재중 한국인 학자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한복을 입으면 민족 고유 풍습을 지킨다고 고마워하면서 조선족이 한복을 입으면 한복공정이냐"며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논란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한복공정이라는 것도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중국의 한복공정을 문제 삼는 모 교수는 이번에도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 백과사전에 '한복은 한푸에서 기원했다'는 왜곡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바이두에서 한복의 중국식 발음인 '한푸'(韩服)를 검색하면 조선족 전통 복식, 중국조선족전통민속이라고 나온다. 한복을 중국 고유의 복식이라고 우기는 게 아니다. 이는 그 교수가 한복공정의 사례라며 대단한 증거인양 해당 화면을 캡처해 기자들한테 보낸 이메일에서도 똑같이 확인되는 내용이다. 더욱이 바이두는 중국 정부 소유도 아니다.
개최국 텃세를 말할 수 있지만 심판이 텃세에 영향을 받을 만큼 당시 경기장을 중국 관중이 압도한 것도 아니다. 억울하지만 모든 경기에서 특히 쇼트트랙 경기에서 항상 있었던 판정 논란을 넘어 '반중'의 한 근거가 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