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수출 길마저 위태…코앞에 닥친 탄소국경세 장벽②코로나19는 시작…빙하 속 전염병 눈뜨나③땅속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동토연구자의 증언 ④온실가스 '응답하라 2000'…밀린 숙제 몰려온다 (계속) |
따뜻한 남쪽나라 한국엔 빙하도, 영구동토층도 없다.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장마와 열대야가 계속되는 날짜가 늘어나는 것, 사과의 고장이 경상북도가 아니라 강원도가 되는 것 정도로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를 연상할 뿐이다.
김민철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에게 기후변화는 그보단 더 생생한 경험이다. 지난 7년간 여름엔 북극을, 겨울엔 남극을 방문한 그는 거대한 빙하의 모서리가 수시로 굉음을 내며 떨어지거나 집 밑 땅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들썩이는 일을 겪었다. 이미 현지 주민들은 열대우림에서 수상가옥을 짓듯 땅 깊이 파이프를 박고 지면과 닿지 않게 집을 띄워 지은 지 오래됐다고 한다.
2100년까지 1.5도?…언 땅의 시계는 더 빨리 돌아간다
여름을 포함해 1년 내내, 2년 이상 녹지 않는 땅을 영구동토층이라고 한다. 영구동토에는 1조6천억톤의 탄소가 저장돼 있는데, 대기 중 탄소의 2배를 넘는 양이다.
땅이 녹으면 탄소는 이산화탄소나 메탄으로 배출된다. 지구온난화가 동토를 녹이고, 녹은 동토가 다시 이산화탄소나 메탄 등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악순환으로 기후변화의 속도를 점점 빠르게, 예측불가의 영역으로 만든다.
김 연구원은 극지 현장에서 영구동토층을 채취해 그 안의 미생물을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빙하 쓰나미보다 더 오싹한 것은 미생물이 작용할 새도 없이 영구동토층이 녹아 땅이 꺼져버리는 현장을 볼 때다.
그는 "지금 기후모델이란 것은 영구동토가 천천히 녹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 최근 한 번씩 온도가 급격히 올라 동토가 무너지면서 갇혀 있던 가스가 훅 빠져나오는 현상이 목격된다"며 "얼마나 많은 양이 어디에서 나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호수에서 많이 검출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최소 20배 이상이어서 지구온난화의 시한폭탄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기후모델에는 이같은 '급발진' 변수들이 다 포함되지 않았다.
녹은 땅에서 새 감염병이?…인류는 모르는 것 투성이
물론 아직 단편적인 사례일 뿐이어서 전염병의 위협을 일반화하긴 어렵다. 김 선임연구원은 "영구동토층에 묻힌 바이러스는 대부분 인류를 포함한 진핵생물에겐 영향을 주지 않는 원핵생물"이라며 "작은 미생물을 먹고 때가 되면 나와서 분해를 하는 식이어서 병원성 바이러스로 변이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고 말했다.
3만년 전 바이러스가 동토층 해빙으로 깨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제2의 팬데믹을 우려하거나 막연히 공포심만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동토층엔 미지의 바이러스 외에도 인류가 핵발전 사용 후 묻어둔 폐기물도 저장돼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 애버리스트위스대 연구진은 2100년까지 영구동토층의 3분의 2가 사라지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쌓인 각종 폐기물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9년 미국 지구물리학회의 저널인 지구물리학연구회보(Geophysical Research Letters)에는 영구동토층에 봉인돼 있던 수은이 이미 바다를 통해 방출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과학자들은 증거가 수없이 쌓여야 일반화한다. 처음엔 지구온난화가 인간활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하다가 수많은 증거가 쌓여서 이제는 모두 인류의 책임을 시인하게 된 것"이라며 "동토층 해빙에 따른 여러 위험도 증거가 쌓여야겠지만 언제 어떻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