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길마저 위태…코앞에 닥친 탄소국경세 장벽

[탄소문명의 종말①]
EU 탄소국경세 4년 뒤부터 징수, 미국도 법안 발의
유럽 $32억, 미국 $39억 연간 수출규모 감축 전망
"RE100 미가입 삼성, 23조원대 매출 타격 입을 수도"
"안일 대응시 '기후위기' 앞서 '시장위기' 먼저 당한다"

▶ 글 싣는 순서
①수출 길마저 위태…코앞에 닥친 탄소국경세 장벽
②코로나19는 시작…빙하 속 전염병 눈뜨나③땅속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동토연구자의 증언
④온실가스 '응답하라 2000'…밀린 숙제 몰려온다
(계속)

기후변화는 영화 '투모로우' 속 재난 뿐 아니라 섬뜩한 경제적 위협으로도 다가와 있다. 최근 대선 TV토론 에서 화제가 된 'RE100'(Renewable Energy 100%) 이행을 협력사에 요구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많아지고, 유럽과 중국 정부의 규제에 플라스틱 산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 Tax)도 유럽연합(EU)이 오는 2026년 공식 시행을 못박았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서는 전에 없던 무역장벽을 눈앞에 두게 됐고, 전에 없던 피해 역시 불가피해 졌다.

EU, 4년 뒤 탄소국경세 징수…미국도 시간 문제


탄소국경세는 탄소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의 수출품에 대해 부과하는 수입관세다. 온실가스 규제를 등한시 하는 국가나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가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전 지구적인 생산구조 변화와 함께 지구온난화 예방을 꾀한다는 취지다.
최근 30년간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140%나 급증해 외국을 압도했다. 자료=환경부 및 OECD
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현재 1990년 대비 140.1% 급증했다. 같은 기간 OECD 통계를 보면 영국(-43.0%), 독일(-35.1%), 프랑스(-19.0%)는 줄었고, 미국은 1.8% 증가에 그쳤다.

탄소국경세 제도화의 선구자는 유럽연합(EU)이다. EU는 2023년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를 도입해 3년 동안은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보고만 받은 뒤,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징수한다는 계획이다.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등 5개 부문 수입품을 탄소국경세 과세 대상으로 우선 적용하되, 점차 대상 품목을 늘려간다는 게 EU 방침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EU에 비해 다소 느리지만, 탄소국경세 추진 의지는 분명하다.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던 전임자와 달리, 협약에 복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발표한 '무역정책 의제'에서 EU의 CBAM과 비슷한 국경탄소조정(Border Carbon Adjustment) 도입 검토를 천명했다.

실제로 미국 의회에는 2024년부터 화석연료,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에 우선적으로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유럽연합에서 발효가 임박한 탄소국경세 입법안과 미국 민주당이 추진 중인 입법안 비교. 자료=EU 집행위 및 미국 의회
우리 무역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 9.9%, 수입 10.7%에 달한다. 특히 2012년 이래 EU를 상대로 매년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이라, 관세장벽이 신설되면 무역수지 악화가 심화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출의 14.9%, 수입의 11.9%를 의존한 거대 시장이다. EU보다 비중이 큰 만큼, 미국의 탄소국경세 도입 역시 우리 경제에 파장이 클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징수하면, 우리 수출 감소율은 중위값 기준으로 각각 0.5%와 0.6% 위축될 것으로 추정됐다. 자료=한국은행
구체적 수치도 나와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에는 탄소국경세의 영향으로 한국의 연간 수출이 EU(영국 포함)에서 32억달러(0.5%), 미국에서 39억달러(0.6%) 각각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실렸다. 이는 EU와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톤당 50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톤당 50달러는 연구진이 가정한 숫자일 뿐, 이보다 탄소국경세가 높게 정해지면 무역 피해는 더 커진다.

톤당 35달러로 감면받는 시나리오에서는 EU 19억달러(0.3%), 미국 26억달러(0.4%)로 수출 감소폭이 완화됐다. 이는 EU·미국이 한국의 탄소배출 규제의 효과를 인정한다는 가정에 기반하지만, 수출업종에 무상 배출할당 특혜를 주는 현행 제도가 그들의 공감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탄소국경세 치명타, 중소기업이 맞을 수도


포스코·삼성 등 직접수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간접수출까지 감안하면 탄소국경세의 타격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특히 EU로의 간접수출 규모가 큰 중소기업들이 탄소국경세의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

원의 면적은 직접수출 대비 간접수출 비율을 나타낸다. 즉 해당 산업에서 간접수출을 통해 수출활동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이 많을수록 면적이 크다. 현재 CBAM 대상품목이 주황색이며 색이 진할 수록 하위품목의 포함범위가 넓다. 자료=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책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지난해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국경세 적용 대상 중소기업의 EU 상대 직접수출 규모는 연간 6억1000만달러, 간접수출 규모는 7억6000만달러였다.

연구원은 "향후 탄소국경세가 복합재나 공급망으로까지 확대될 경우 국내 중소기업들도 직접적인 규제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며 "수출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탄소국경세 대응 비용과 의무를 하청업체에 전가하거나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RE100·내연기관차 규제 등…'탄소경제' 사양길로


물론 EU·미국에 보복관세로 맞서는 등 탄소배출 감축 대열에서 '이탈'하는 국가가 등장해, 이들 세력에 우리나라가 합류하는 대응 경로를 모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대응에서 국제적 합의가 무르익은 지금 이탈의 당위성이나 실효성이 크지 않다. 미국의 대척점에 선 중국마저 2060년까지 순 탄소배출량을 제로(0)로 맞추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탄소국경세를 차치하더라도 'RE100'이라는 산업계의 기후변화 대응 캠페인이 미국과 유럽 거대기업 중심으로 진행 중이고, 우리 기업들에게도 동참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비영리단체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 주도로 2014년부터 진행 중인 RE100은 2050년까지는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만으로 전기를 100% 조달하는 체제를 갖추자는 내용이다.

애플은 2025년까지 공급망 전체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삼성전자(반도체) 등 협력사에 RE100을 종용하고 있다. BMW도 삼성SDI(배터리)에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다. 국제 기류에 편승하지 못하면 낙오될 지경이다.
삼성전자가 RE100에 불참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이 해마다 늘 것으로 추정됐다. 자료=사단법인 넥스트
에너지·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는 지난달 말 '한국 산업계가 직면한 기후리스크의 손익 영향도 분석'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RE100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 2030년 매출이 약 23조700억원 감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온실가스 배출 차량의 절멸을 추진 중인 EU와 미국에 발맞춰야 한다. EU에서는 203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 차량의 신규등록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미국 정부도 2030년 신규차의 50%를 탄소배출이 없는 차량으로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발효시켰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IMF 외환위기 때처럼 기후위기 역시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강제하고 있다"며 "한국만 혼자 이런저런 핑계나 대고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일하게 대응하다가는 '기후위기' 전에 '시장위기'를 먼저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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