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취재진의 인터뷰를 고사해왔던 한국 쇼트트랙 간판 황대헌(23·강원도청). 그러나 황대헌은 과묵한 남자가 아니라 알고 보니 '토크 왕자'였다.
황대헌은 9일 오후 중국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09초219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10명이나 나선 결승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뽐내며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이자 전체 두 번째 메달이다. 황대헌 개인에게도 의미가 컸다. 그는 생애 첫 금메달이자 지난 평창 대회 500m 은메달까지 2회 연속 메달을 획득했다.
이미 황대헌은 전날 훈련 후 취재진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편파 판정 논란 고민을 완벽하게 털어버린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의 입담은 금메달 획득 후 정점을 찍었다.
황대헌은 9일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취재진이 그동안) 거칠게 대해주셔서 제가 얼마나 서운했는데요"라면서 "그래도 말 통하는 한국 사람들인데"라며 짐짓 애교(?) 섞인 미소를 지었다.
첫 질문은 뉴욕 타임스 기자였다. 한국어를 모르는 뉴욕 타임스 기자는 올림픽 통역 자원봉사자에게 질문을 전달했고, 한국어로도 통역이 됐다.
질문은 '지난 7일 판정과 이번 경기에서 판정이 달라진 것을 느끼느냐'는 것이었다. 보통 인터뷰 시작은 소감이나 가벼운 대화로 하는 것과 달리 처음부터 강하고 예민한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황대헌은 "너무 공격적이신데?"라고 일단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1000m도, 1500m도 깔끔한 경기를 했다"고 답했다. 민감한 질문을 여유 있게 받아넘긴 명답이었다.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가 시작되자 분기기는 더 밝아졌다. 황대헌은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며 환한 웃음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황대헌은 1500m 준준결승을 1위로 통과한 뒤 마치 편파 판정 논란에 대해 자신의 깔끔한 주행을 강조하는 듯이 중국 관중석을 바라보며 경기장을 돌았다. 마치 축구 한일전 원정에서 박지성이 통렬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했던 '산책 세리머니'를 연상시키는 듯했다.
이에 대해 의도한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이 나왔다. 이에 황대헌은 "이건 또 의도라고 해야 재미있는 거잖아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곧바로 "의도한 것이 아니다. 진짜 그런 내용으로 (기사를) 써주시면 안 된다고"며 능수능란하게 자체 검열을 하면서 "(제가 그런 의도로 했다면) 그것은 정말 쿨하지 못한 행동"이라면서 특별한 의미가 없었음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판정은 정말 심판의 몫이니까 깨끗하지 못한 경기니까, 제가 그런 판정을 받은 것"이라면서 "그래서 그때 한 수 배웠던 거고 그래서 그 배운 것들 때문에 오늘 더 깔끔한 것 중에 제일 깔끔한 주행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 대인배다운 모습이다.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결국 믹스트존에서 폭소가 터졌다. 황대헌은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면서 B 브랜드 치킨을 언급했다. 올림픽을 오기 전에도 B 브랜드 치킨을 먹었다는 것.
취재진은 황대헌에게 "에이…"라고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대회 한국 선수단장인 대한빙상경기연맹 윤홍근 회장이 B 브랜드 치킨업체 회장이기 때문.
황대헌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취재진에게 열변을 토했다. "저는 황금 올리브 닭다리를 진짜 좋아한다"면서 황대헌은 "아버지께서 농담으로 '한국에 있는 닭이 왜 점점 작아지는지 알겠다'고 말씀하셨다. 제가 닭이 클 만하면 계속 잡아먹는다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얼굴까지 빨개지며 메뉴까지 밝힌 황대헌의 진심에 취재진도 웃으며 "알았다"고 인정했다. 대회 관계자가 길어지는 인터뷰를 중단시킬 만큼 황대헌의 입담은 대단했다. 시원하게 토크를 털어놓은 황대헌은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