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큰 관계가 없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악당, 미국은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를 지켜주려는 정의의 사도처럼 일견 비친다.
2022년의 시점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시계를 조금만 거꾸로 돌려보면 달리 보이는 측면들이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vs 바르샤바조약기구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알려져있는 것처럼 NATO(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에 있다.
NATO는 무엇인가?
군사대국이던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2차 대전 직후인 1949년 서방국가들이 만든 방어적 성격의 연합기구다.
NATO가 창설되자 이번엔 소련이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1955년 그 대항마로 동구권 8개 국가들과 함께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만든다.
양측간의 견제와 경쟁은 1980년대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하고, 동구권이 몰락하자 소련의 후신 러시아는 1991년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해체한다.
독일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이 'NATO 영역을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믿은 것이다.
사실 소련 때문에 창설된 NATO였기에 논리적으로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NATO역시 해체되는 게 맞다.
미국, NATO 동진정책 진두지휘
그러나 NATO는 소련 붕괴를 틈 타 오히려 몸집을 불려갔다. NATO동진정책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1997년 NATO의 동진 방침을 공개리에 밝혔다. 여전히 수천기의 핵무기를 갖춘 군사강대국으로 남아있는 러시아가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NATO팽창 정책은 당시 미국 안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냉전시대 소련 봉쇄 정책을 설계했던 조지 케넌(George F. Kennan) 전 주소련대사도 1997년 2월 5일 뉴욕타임스에 '치명적 실책'(A Fateful Error)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올리며 NATO의 동진은 필연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거라며 극구 반대했다.
NATO 동진정책은 치명적 실책
그는 NATO의 확장은 △러시아의 국수주의, 반서방주의, 군국주의 경향을 자극하고 △러시아 민주주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냉전 분위기를 부활시키고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도록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99년 NATO 창설 50주년을 맞이해 한때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던 헝가리, 폴란드, 체코를 NATO에 가입시킨다.
2000년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뒤 NATO확대는 더욱 가속화됐다.
2004년에는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추가 가입시키면서 NATO는 이제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스부르크 130km 앞까지 세력을 넓혔다.
미국은 이어 2008년에는 조지아(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토록 유럽에 압력을 넣었다.
2008년 8월 러시아가 조지아내 분리주의세력 지원을 명목으로 군사 개입한 것은 NATO확장에 대한 선제적 대응 조치였던 셈이다.
남은 것은 이제 우크라이나였다.
미국, 친러 우크라 대통령 탄핵 사주 들통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놓고 미국과 러시아간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우크라이나를 친서방국가로 만들려는 미국과 친러 국가로 두려는 러시아간의 보이지 않은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던 중 2013년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노코비치 대통령이 반정부 세력에 의해 실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반정부 세력과 미국정부간 커넥션이 발각됐다.
2010년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상적으로 취임한 대통령을 사실상의 쿠데타로 쫓아낸 과정에 미국정부가 개입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러시아가 초강경 대응했다.
바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 자치공화국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친러 성향의 돈바스 분리세력(도네츠크, 루간스크 공화국)에 대한 군사 지원이다.
프랑스·독일, 민스크 의정서 중재
우크라이나 내전으로도 불리는 돈바스 분쟁은 프랑스와 독일의 중재로 2014, 2015년 각각 1,2차 민스크 의정서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체결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7년이 지나도록 민스크 의정서에서 명시한 돈바스 자치권 부여를 거부하면서 민스크 의정서는 휴지 조각이 됐다.
최근 프랑스의 이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바삐 오가며 중재를 시도하고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민스크 의정서의 부활을 목표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