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발생한 편파판정 논란에 더불어민주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그간 보수야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중 성향을 보여 왔는데, 이번 논란으로 인해 '혐중'(嫌中) 정서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을 직접 비판하는 일은 자제한 채 판정 자체의 문제성을 부각시키며 민심을 달래고 있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목소리가 나오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무역 25%가 중국에 의존"…'사드 추가배치' 윤석열 비난도
민주당과 이재명 대선 후보는 그간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나라와 거리감을 더 좁히지 않으면서 최대한 실리를 취하겠다는 노선을 견지해왔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첫 4자 TV토론회에서도 "(우리나라) 무역의 25%가 중국에 의존하고 협력하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가 연간 50조원 이상 발생한다"며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혐중 정서에 편중해서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이간질해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고, 외국인들이 보험료를 많이 내고 있는데 그런 사실을 지적해서 사실은 흑자인데 적자처럼 해서 갈등을 부추기는 정책을 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압박했다.
특히 윤 후보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발언에 대해서는 "사드 배치는 미사일 방어체계로 (우리나라에서) 고고도미사일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며 "왜 그것을 다시 설치해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 경제를 망치려고 하는지,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를 말해달라"고 강하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민주당도 중앙당 차원은 물론 이 후보 직속인 선거대책위원회 균형발전위원회와 각 지역시당과 시도의회 차원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하는 등 중국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연이어 내고 있다.
겉잡을 수 없이 번지는 '혐중' 정서…與 약점인 2030세대서 더 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발 혐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 개인 SNS에도 중국의 편파판정이 도를 넘어섰다는 불만 내용을 담은 게시물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개막식에서 불거진 중국의 '한복 문화침탈' 논란에 이어 편파판정까지 일어난 것이 비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림픽 보이콧 촉구와 같은 점잖은 표현 외에, 중국인을 '짱X'라고 비하하는 등의 욕설도 적잖이 눈에 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정부가 나서서 편파판정에 이의를 제기해 달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제소해야 한다', '문화침탈을 제대로 항의하지 않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경질해 달라' 등의 내용을 담은 글이 다수 게시됐는데, 추천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공정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2030세대 사이에서 더욱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점도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스런 지점이다.
이 후보보다 윤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발빠른 '공감' 대응 나섰지만 김용민 무리수에 논란만…"뾰족한 수 없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이런 현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이 후보는 직접 SNS를 통해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편파판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적극 공감에 나섰다.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인 홍영표 의원은 "대한체육회가 쇼트트랙 판정에 대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하기로 했다. 백번 잘 한 결정"이라고 대한체육회를 치켜세웠고, 또 다른 공동선대위원장인 우원식 의원도 "고생한 선수들 마음 다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이라고 응원 메시지를 게시했다.
다만 "중국은 더티(dirty) 판정을 즉각 취소하고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돌려줘야 한다. 중국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 스포츠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중국을 비난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와 달리, 여권 인사들의 메시지 수위는 중국 정부를 의식한 나머지 그리 높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지중(知中)파'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중국 쪽 인사와 통화를 했는데, 중국에서도 이번 사건을 '창피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날 때쯤이면 (혐중정서가) 절정이 되겠다"고 우려하면서도 정부·여당의 대응 수위에 대해서는 "국민 정서에 대해서 정치권이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정치권이 여론을 자극하면 안 되고, 최대한 절제하면서 국익을 우선 놓고 봐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의 SNS 메시지는 추가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김 최고위원은 "국힘(국민의힘)이 집권하면 매일 매일이 중국올림픽 보는 심정일 것이다. 불공정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뒤늦게 삭제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물론 지지층 사이에서 중국과 국민의힘을 무리하게 연결시킨 주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속된 말로 이런 정신 나간 행위 때문에 선거에서 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하면서도 "이미 외교·안보 기조가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갑자기 바꿀 수 없지 않겠나. 보다 의연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