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돌려줄테니 제발 떠나주세요" 재건축을 앞둔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주민들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플래카드를 내걸며 현대산업개발에 떠나달라고 할 정도로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았다. 광주시 화정동에서 발생한 아파트 붕괴참사 등 잇따른 안전사고를 일으킨 회사에 우리의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기 전 나온 관양동 주민들의 '현대산업개발 선택'은 일반의 예상을 빗나간 '반전'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5일 열린 관양 현대아파트 조합원 투표에서(총조합원수 959명) 509표를 얻어 400표에 그친 롯데건설을 여유있게 따돌렸다. 악조건을 딛고 수주전을 승리로 이끈 셈인데 이유가 있었던 걸까?
현대산업개발이 현대아파트 재건축사업을 따내기 위해 제시한 조건을 보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후분양 조건으로 평당 4800만 원 보장, △세대당 7천만 원 즉시 지급, △30년 안전결함 보증, △외부 안전감독관 운용 등의 파격적 조건을 내걸고 주민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썼다. 이게 통한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후분양으로 평당 4800만 원을 보장해주는 데 대한 긍정 평가가 많았다"는 수주 성사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이 관양동 재건축에 얼마를 들이고 얼마의 마진을 취하는 지는 회사 내부자 말고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얻을 이익의 일부를 호조건으로 제시해 조합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을 수도 있고, 더한 경우 겨우 BEP 즉 손익분기점을 맞췄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화정동 아파트 붕괴 참사로 회사가 존폐의 위기상황으로 내몰린 뒤 처음으로 맞는 아파트 공사 수주경쟁이어서 이 기회를 놓치면 회생 불가능, 끝장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였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광주시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공연하게 퇴출을 거론했고 노동부와 국토부 등에서도 최강의 징계를 거론하는 상황, 여기에 현대산업개발을 바라보는 국민여론 역시 최악이라 회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를 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수주로 위기를 돌파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와는 별론으로 건설사가 얻을 이익 조금 줄이고 주민들 마음을 살 미끼를 던져서 당면한 위기만 피하면 그만일까라는 문제의식과 국민적 공분은 그대로다.
애석하게 간 생명은 누가 책임지라는 건가? 생명이 끝나버린 피해 당사자, 가족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아린 아픔은 보상할 길이 없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현장구조와 남은 가족들의 삶부터 먼저 챙기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현실은 현대산업개발이 구조에도 그다지 적극적이고 협조적이지 않다는 기사가 이따금 나오고 있다.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1달 가까이 흘러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잘못마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 틈에 기업은 또 건재하게 살아남는다면 한국은 언제쯤 참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