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FC 수사 무마 의혹의 키 '수사 일지'는 '다잉 메시지'?

"수사 일지 킥스에 올린 건 이례적"…기록 남기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성남지청, 지난해 8월 '지청장 권한 강화' 규정 수정…"수사 어렵게 해"
김오수 지시한 경위 파악, 현재도 진행 중

수원지검 성남지청. 연합뉴스
사의 표시로 성남FC 후원금 수사 무마 의혹의 도화선을 당긴 검찰 고위 간부가 사의 표명 전 수사 일지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검사가 열람자 설정을 할 수 있어 특정인만 볼 수 있지만,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라 수사 무마 의혹 경위 파악이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총장 지시로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수원지검장이 경위 파악에 나선 가운데 이 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성남지청장과 수원지검장은 물론 검찰총장으로까지 의혹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수사 일지 킥스에 올린 건 이례적"…기록 남기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성남지청의 박하영(48·사법연수원 31기)차장검사는 사의를 표명하기 전 수사 일지를 파일 형태로 정리해 킥스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박 차장은 근거를 남긴다는 차원에서 이같은 기록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7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검찰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킥스에는 '의사결정 시스템' 항목이 생겼다. 결재할 때 반려 내용을 적을 수도 있고 건의 내용을 적을 수도 있다.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상급자가 지시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최종 결정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통상 검사들은 이같은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구두로 의사 소통이 이뤄지고 굳이 내부 의사 결정을 남길 상황이 없어서다. 한 검찰 관계자는 "한 번도 써보지 못했고 이걸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렇게 상급자의 지시를 킥스에 기록으로 남겼다는 건 의도적으로 반발하고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올린 것으로, 마치 살해 피해자의 '다잉메시지(dying message)'와 같다"고 말했다.

수사팀·박 차장 수 차례 보완 수사 주장 하자 박은정 지청장 시간끌기 

박 차장검사가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하고 이같은 기록을 남겨둔 건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둘러싼 박은정 성남지청장(50·연수원29기)과의 갈등이 작용했다고 검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2015~2017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성남시장 시절 두산건설, 네이버, 농협, 분당차병, 알파돔시티, 현대백화점 등 총 6개 기업이 유리한 인허가의 대가로 프로축구단인 성남FC에 후원금 약 160억원을 지급했다는 게 골자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당시 바른미래당이 이재명 후보를 뇌물 혐의로 고발하면서 사건이 커졌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고발 후 3년 3개월 동안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지난해 9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고발인 측이 경찰의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해당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다. 사건을 넘겨 받은 성남지청은 형사1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기록 재검토에 나섰다. 주임검사인 A검사는 사건 기록을 검토하면서 경찰 수사기 미진했던 부분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이 사건에 대해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내용은 박 차장검사를 통해 박 지청장에게 보고됐다. 하지만 박 지청장은 보완 수사 필요성 의견에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수사팀은 수차례 보완 수사의 필요성을 보고했지만 박 지청장은 계속 반려 의견을 냈다고 한다.

'지청장 권한 강화' 위임·전결 규정 수정…"수사 어렵게 해"

김오수 검찰총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경찰이 무혐의로 사건을 보내기 전에도 성남지청은 자체적으로 네이버가 시민단체인 희망살림을 통해 성남FC에 후원금을 준 사건에 대해 수사해왔다. 당시 수사팀은 네이버 후원금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6~7월쯤 박 차장은 수사과를 지휘하던 형사3부 의견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조회를 요청했지만, 대검 반부패·강력부는 경찰과의 중복 수사 등 절차상 문제로 반려했다. 관련 보고를 받은 김오수 검찰총장도 박 지청장에게 청사 이전 문제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절차상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고 한다.

이후 박 지청장은 결재 권한을 지청장에게 보다 집중하는 방향으로 위임·전결 규정을 수정했다. 성남지청이 지난해 8월 바꾼 위임·전결 규정에 따르면 FIU 자료 조회 의뢰를 △중요 사건과 △일반 사건으로 나눠 중요 사건일 경우 지청장 전결로 변경했다.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중요 사안의 경우 지청장에게 결재를 받도록 규정을 바꿨고, 정보보고도 지청장 결재사항으로 변경했다.

수사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검찰 내부에서 나왔다. 한 검찰 관계자는 "FIU 수사 의뢰는 수사에 있어서 기초적인 걸 보는 건데 별도로 규정을 만들어 지청장 전결로 하는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성남지청은 위임 전결 규정 조정 이유에 대해 "기관장 부임 후 전반적인 규정 정비 차원에서 타 청의 규정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수사 무마 경위 파악 중…"수사 일지 빼면 역풍 맞을 것"

일각에서는 사표를 낸 박 차장이 이의 제기를 왜 하지 않았냐고 지적했지만, 박 차장이 이의 제기를 할 대상이 아예 없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성남지청이 공식적으로 밝힌대로, 명시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박 지청장이 형식적으로는 '검토 중'이라면서 실질적으로는 수사를 막았기 때문에 박 차장이 결단을 내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도 성남FC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은 신성식 수원지검장(57·연수원27기)이 경위 파악 중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 일지를 빼고 경위 파악을 했다간 역풍에 휩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며칠 전 만해도 신 지검장이 수사 일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수사 일지를 당사자로부터 제출 받아 살펴봐야 한다"면서 "그걸 빼고 경위 파악을 완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성남FC 의혹 관련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며 검찰 고위 관계자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굿바이 이재명'의 저자 장영하 변호사도 이 사건과 관련해 김오수 검찰총장과 박은정 성남지청장을 고발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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