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천만원에 내집 마련? 고령층 대상 협동조합 사기 의혹

가입 시 100만원, 입주 시 900만원…서울에 집 한 채
서울시와 협의 마쳤다지만, 시청에선 "관련없는 단체"
개발 계획 없거나 불가능한 지역 홍보…노인들 피해

A협동조합 사무실에 붙여놓은 서울시 성북구 및 노원구 개발 계획 지도. 허지원 기자
세월은 가고 인생은 흘러간다. (중략) 이제 늦었지만 제가 후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제 능력으로 집 없는 최극빈자들을 위해 주택 300만 호를 무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게 됐다. (A협동조합 정관에 실린 '설립자 정신' 중)

서울 서초구에 있는 A협동조합은 가입비(출자금) 100만원을 내면 임대아파트 분양권을 준다고 주장한다. 아파트 입주 시 900만원을 추가 입금하고, 총 1천만원의 선수금을 내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조합의 목표는 수도권 100만 호를 포함해 전국에 임대아파트 300만 호를 공급하는 것이다. 서울시와 구두 협의가 됐으며, 구청에서 허가받고 하는 사업이라고도 홍보한다.

조합비 1천만원으로 집을 마련하는 방법은 이렇다.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A협동조합은 땅을 개발시켜주겠다며 지주들에게 공동 사업 동의서를 받는다. 땅을 확보한 후에는 은행으로부터 담보 대출을 받아 대형 건설사와 계약해 주택을 짓겠다고 한다. 조합원은 평당 '600만원' 수준인 건설비를 30년 혹은 50년 동안 조합에 갚으면 된다. 1천만원은 조합의 건축 설계비, 임차료, 운영비 등에 쓰인다.

하지만 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이 말하는 개발 부지 및 계획은 실체가 없거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시청은 A협동조합이 시에서 주관하는 공공주택이나 민관 협력 임대주택 사업 어느 쪽과도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또 조합 측이 주택을 짓겠다고 한 주소지 관할 구청들에 따르면, 해당 부지들은 개발이 불가능하거나 주거정비 사업(지역주택조합) 요건도 안된다.


임대사업자 등록 없이 조합비부터 수령…'작업 중' 주장 토지는 '개발 불가' 지역

해당 조합은 2017년 7월 서초구청에 협동조합 설립 신고를 했다. 그러나 민간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면서 임대사업자 등록은 물론, 건설대지 관할 구청에 조합원 모집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민간임대주택에관한특별법(민간임대주택법) 위반 소지가 있다.

조합 측은 현재 '동작구 사당동 산32-2번지(까치산공원)' 일대를 '토지 작업 중'이라고 얘기한다. 기자가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가입 상담을 맡은 한 조합 이사는 "올해 안에 착공해 3년 뒤 입주가 가능하다"며 "선착순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으니 빨리 (입금)하는 게 좋다"고 재촉했다. 동작구 외에도 노원구와 성북구 등에 주택을 개발할 것이라며 조합 사무실 곳곳에 지도와 청사진을 붙여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동작구청은 "현재로서는 공원시설 외 다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노원구청 관계자 또한 "(조합이 말한 부지는) 개발제한구역에 문화재 보호구역도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성북구청 관계자도 "해당 지역은 주거정비 사업도 어렵고 세계문화유산 의릉이 있는 지역으로 개발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개발제한구역에 가능한 행위 허가 목록(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에 '임대아파트 건설'은 없다. 조합의 주장대로 지자체와 어떠한 협의를 했더라도, 해당 용지에 조합원들에게 공급할 주택을 새로 지을 수는 없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조합원 대다수가 노인이며, 가족들에게 가입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사기 피해를 보고도 모를 수 있다는 점이다. 자녀와 손주 명의로도 가입이 쉬워 일부 조합원은 조합 계좌에 수백만원을 입금하기도 했다.

A협동조합 조합원 가입 신청서. 허지원 기자
지난해 4월 어머니가 조합에 가입했다는 김모(44)씨는 "저희 엄마는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있고 또 실제로 그랬으면 하는 희망도 있는 것 같다"며 "처음에는 (조합이) 100만원을 내라고 하지만 결국 짓지도 않는 집 짓겠다고 돈을 더 모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건강식품 등 다단계 회사 쪽 사람들이 서로 조합에 데려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조합원들은 대부분 지인 소개를 받고 와 가입 신청할 때 추천인을 이야기한다. 조합 측은 부이사장이 목사라 선교 활동 과정에서도 조합 홍보를 하고, 대한노인회 등 단체와 교류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단계 설계 구조에 대해선 "어떤 유사 수신도 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속이고 편취한' 사기 혐의 짙어…100만원씩 '소액' 못 돌려받는 경우 속출


A협동조합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고 조합 계좌로 100만원을 입금하면 받게 되는 조합원 출자증서. 독자 제공
조합 측에 따르면 현재 조합원은 9500명에 달한다. 출자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는 발기인 및 초기 조합원 1500여 명을 제외하더라도 8천명이 100만원씩 내 조합에는 80억원가량이 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합 측은 조합이 자원봉사로 운영되며 일부 조합비는 조합 운영비와 사무실 임차료 등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출자금을 돌려받고 싶다면 조합 가입 1년 뒤에 '반환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합 측은 가입 상담 시 "(출자금을) 내일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거나 "(출자증) 명의 변경은 가능하지만 100%는 환불은 안된다"고 말하는 등 제각각인 설명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CBS노컷뉴스가 조합 정관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환급 절차'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조합이 사기라고 의심하는 장모(41)씨는 지난해 12월 어머니가 조합에 가입한 사실을 알고 어머니와 함께 사무실에 가 조합 탈퇴 확인서를 받았다. 그러나 100만원에 관해선 "(조합이)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정확히 언제 주겠다는 말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조합 부이사장은 "반환 신청을 하면 100% 돌려준다"며 "너무 쉽게 해주면 우리가 고생해서 준비해놨는데 어려워지니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돈은 다 내준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 김예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처음부터 되지 않는 부지에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해 돈을 수령한 것이라 고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사기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보통 투명하게 하려면 신탁 계좌로 입금하게 해 신탁사에서 자금을 관리하고 인출을 쉽게 못 하도록 하는데 이곳은 조합 계좌라 대표자가 원하면 언제든 (돈을) 뺄 수 있다"며 "조합원 출자금이기 때문에 총회를 거쳐서 처분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하면 횡령이나 배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협동조합은 일반적으로 매매나 분양 계약할 때 금액이 정해져 있는데, 이곳은 가입 계약이다보니까 금액이 늘어나면 계속 부담해야 한다"며 "조합의 책무가 결국 조합원 책무가 되기 때문에 조합 대표자가 어떤 채무를 부담한다고 했을 때 조합원들이 떠안아야 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A협동조합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 허지원 기자
게다가 해당 조합은 지난해 4월 '기획재정부에서 승인한 협동조합으로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됐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기재하고 거짓 광고한 혐의로 서초구청이 경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사건은 고발 당시 제출한 증거가 부족해 두 달 뒤 불입건 종결됐다.

문제가 된 전력이 있음에도 조합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영업하고 있으며, 여전히 당당히 '임대 주택' 계획을 설파하고 있다.  조합 부이사장은 "우리 프로그램을 자기들 것인 양 사칭하는 다단계 단체들이 있다"며 "서초경찰서에서도 '좋은 일 하는데 다른 나쁜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면서 우리를 많이 보호해줬다"고 전했다.

지자체와 협의되지 않은 사업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안 되는 땅이 있고 되는 땅이 있다"며 "여러 지주가 다 모여 있으니 전체적인 땅으로 보면 안 되지만 99%의 불가능보다 1%의 가능성을 보고 사업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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