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13년차 주부→아이돌…양은지 "땀에 전 티셔츠마저 좋았죠"

tvN '엄마는 아이돌'로 탄생한 '마마돌' 멤버 양은지 인터뷰 <상>
2007년 베이비복스 리브로 데뷔, 14년 만에 tvN '엄마는 아이돌'로 다시 무대에
자신감이 1%도 없었던 시기…제작진 설득과 가족들 응원으로 합류
잔뜩 경직됐던 첫 무대, 아쉬움 남았던 보컬 미션
가장 막막했던 '넥스트 레벨' 연습하며 오히려 자신감 얻어


4일 종영한 tvN '엄마는 아이돌'에 출연한 '마마돌' 멤버 양은지. 사진은 첫 번째 미션 '빨간 맛' 당시 모습. tvN 제공
결혼 후 13년 가까이 직업란에 '주부'라고 썼다. 한때 가수로서 무대에 섰지만 이미 너무 예전 일이었다. 가끔 아이들이 과거 활동 영상을 보고는 "엄마, 왜 이렇게 화장이 진해?" "너무 이상해" 하고 장난을 치는 게 고작이었다. 두려움과 망설임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아이돌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피어났다. 끊임없이 출연을 권하며 설득했던 제작진과, 든든하게 응원해 준 가족들 덕에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양은지는 이렇게 tvN '엄마는 아이돌'의 히든 멤버로 합류했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됐지만 여전히 무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소환해 데뷔시키는 프로젝트. 그렇게 시작한 예능 '엄마는 아이돌'은 안정적인 시청률과 온라인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소셜미디어 팔로워 2만명, 팬클럽 2천명이었던 데뷔 조건도 각각 3만 9천여명과 1만 2천여명이라는 수치로 초과 달성했다. 양은지는 가희, 박정아, 선예, 현쥬니, 별과 함께 '마마돌'로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다.

데뷔곡 '우아힙'(WooAh HIP) 음원을 내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마마돌'의 무대로 꽉 채운 단독 콘서트를 열고, 음악방송에 출연하고… 숨 가빴던 3개월을 보낸 양은지를 3일 전화로 만났다. 걱정과 아쉬움이 컸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크고 뒤로 갈수록 즐거움이 커졌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간의 희로애락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가정에 충실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순간 엄마가 됐고, 그러니 '엄마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야 멋있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니라, 제가 저를 위해서 뭘 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아닌 것 같더라"는 게 양은지의 설명이다. 출연을 망설였던 본인만큼이나, 처음엔 가족들도 걱정했다. 초등학생인 두 딸 지율과 지아가 특히 그랬다.  '엄마, 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양은지는 "아이들도 못 믿는 거다. 저는 맨날 집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엄마의 모습으로만 비친 세월이 있으니까, TV 나가서 가수 활동한다는 것을 너무 걱정하더라. 노래방도 안 가고 춤도 안 췄던 사람인데 괜찮겠냐고. '너희 덕분에 이 악물고 하겠다'고 하니, 아이들도 엄마가 (출연)하면 너무 좋고, 잘했으면 좋겠다며 으쌰으쌰 힘을 줬다. 의젓한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마마돌 박정아, 양은지, 가희, 선예, 현쥬니, 별. tvN 제공
"이번 기회로 우리 아이들한테 제대로 된 모습으로, 요즘 아이돌스럽게 '짠!' 하고 보여주면 '엄마 최고!' '엄마 너무 멋있다' 하는 말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여자 가수들은 특히나 결혼과 동시에… 아기를 낳으면 나오기가 힘들잖아요, 우리나라 문화가. 아이들도 이제 알 걸 알고 TV도 보니까, 첫째 둘째한테 직접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지난해 10월 첫 미팅을 했고, 11월 둘째 주부터 투입돼 연습을 시작했다. 고난도 미션을 해내야 하는 촬영의 연속. 결혼 후 노래방도 안 가 보고 춤도 안 춰 봤던 양은지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출연했지만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쥬얼리 박정아, 원더걸스 선예, 애프터스쿨 가희까지, "너무 쟁쟁한" 멤버들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자신이 등장하면 어떨까 하고 걱정했다.

'엄마는 아이돌' 출연진에게는 여러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보컬과 춤 평가를 받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지 평가받아야 했다. 양은지는 레드벨벳 '빨간 맛'(Red Flavor)으로 미션에 임했다. 노래와 춤을 따로 준비해도 된다는 것을, 연습 막바지에야 알아 깜짝 놀랐다고. 졸지에 노래, 춤을 한 번에 보여줄 유일한 참가자가 됐지만 '라이브는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빨간 맛'은 어떻게 고르게 됐을까. 일단 너무 최신곡은 접었다. 준비 과정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서였다. 잘 알고 따라 불렀던 곡으로 추렸다. 어떤 걸 해 보고 싶은지 생각했다. 베이비복스 리브 시절에는 '섹시 여전사' 콘셉트를 선보였지만, 평소 '과즙미' 넘치는 여성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그런 무대를 해 보고 싶었다는 게 양은지의 설명이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춤에서는 '하' 등급을 받았다. 배윤정은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격이다. 춤은 거의 율동 수준이었던 것 같다"라며 "13년 공백을 감안하고 봤지만 되게 많이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보컬은 '중'이었다. 박선주는 "원래 노래했던 사람은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고음을 뚫고 나오는 힘은 되게 좋다. 춤추면서 고음 나오기가 쉽지 않다"라고 평했고, "목소리가 각인됐다"라며 음색을 따로 언급하기도 했다.

메인 보컬 선발 미션에서 양은지는 앤원의 '혼자 하는 사랑'을 불렀다. tvN 제공
양은지는 "발을 (바닥에서) 떼서 움직이면 음이 흔들리니까 동작이 강하게 안 나온 거다. 춤만 연습할 땐 빡세게 했는데, 방송에선 살살 췄더라. 라이브를 같이해야 한다고 신경 쓰다 보니까 춤도 별로가 된 거다. 진작에 따로 준비했으면…" 하고 아쉬움을 표했다.

더 아쉬움이 컸던 건 메인보컬 선발 무대다. 제비뽑기로 앤원의 '혼자 하는 사랑'을 부르게 됐다. 아예 모르는 노래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됐다. 모든 연습생이 한 번쯤은 부르는, '연습생 곡 리스트'에 오르는 곡이었던 탓이다. 당시 춤 미션도 동시에 소화하던 차에, 육아와 집안일까지 병행하려니 목 상태가 더 나빠졌다.

양은지는 "제 생각보다 너무 못해서…. 제 마음만큼 소리를 뱉어내지 못했다. 목에 통증이 느껴지니까 더 크게 발성을 못하고 너무 잔잔하게 불렀다. 제가 너무 싫더라. 모든 게 후회됐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목 상태만 더 좋았어도… '빨간 맛'으로 못 보여줬다고 생각해서 보컬 미션에서는 사람들을 놀래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진짜 뭔가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래, 나 몸치야. 춤은 이상해. 그래도 노래는 해'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근데 못 보여줘서 너무 한이 된다"라고 부연했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쉬라'고 했으나, 쉴 수 없었다. 단순히 높은 음을 못 내는 게 아니라, 말할 때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안 하던 춤과 노래를 '갑자기' '단기간에' 해야 해서 그 피로와 긴장이 몸으로, 그중에서도 목으로 왔다. 그렇다고 상황과 환경의 한계만을 탓하지는 않았다.

양은지는 "다른 분들은 해내지 않나. 다들 힘들게 하는 와중에 제가 (힘들다고) 얘기 못 하는 거다. 이건 핑계밖에 안 되니까. 타이트한 일정 속에 지쳐 있어도 다들 너무 멋스럽게 노래를 잘했다. 거기서 오는 우울감이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하고 체력도 안 좋을까. 왜 나는 아팠을까 하며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옆의 분들이 너무 쟁쟁하니까 늘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지' 하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양은지는 가장 어려웠던 미션으로 10시간 안에 '넥스트 레벨' 안무 외우기를 들었다. tvN 제공
매 미션이 고난도로 느껴졌지만 정점은 단연 '10시간 안에 안무 1절 외우기'였다. 에스파의 대표곡 '넥스트 레벨'(Next Level)을 6인조에 맞게 재구성한 안무를 모든 멤버가 다 맞게 춰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양은지는 "도망가고 싶었다"라며 "'죄송하지만 저 집에 갈게요' 이 말이 입 앞까지 나왔다"라고 전했다. 화장실에 간다고 해 놓고 돌아오지 말까도 고민했다.

애프터스쿨의 메인 댄서였던 가희마저도 버거워했던 미션을 받고 '가희 언니도 힘들어하는 걸 나한테 왜 시키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고. 양은지는 "그 갓(god) 가희! 댄스계의 신 같은 언니가 이렇게 힘들고 어렵다는데 왜 나한테 이런 미션을 주는 거지? 했다"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신기하게도, '해 보니 됐다'. '넥스트 레벨'의 시그니처인 '디귿'(ㄷ)자 안무도 하고, 하나둘 안무를 습득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첫날 너무 어렵게 고비를 넘겨서 행복감은 더 컸다. 그는 "'이걸 할 수 있다고?' 했던 동작들이 되는 거다. '어, 이게 되네? 나 역시 가수였구나' 하면서 혼자 약간 자부심이 생겨 그때부턴 기분이 좋더라. 내가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막 붙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목소리 톤이 너무 좋다"라는 박선주의 말도 힘이 됐다. 양은지는 "톤이 좋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던 사람인데, (그 말을 듣고) '나도 장점이 있구나' 싶었다. 전문가 통해서 들으니 '아싸! 나 톤 좋대!' 하면서 자존감 없던 사람이 그때부터 뭔가 되게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라며 웃었다.

규칙적으로 연습실에 모여 춤을 추니 체력도 좋아졌다. 양은지는 "그동안 애 키우면서는 '안 먹어야지' 이렇게 살을 뺐다면, 춤을 추니까 군살이 빠지고 얼굴도 점점 예뻐지는 것 같더라. 내 안에 있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느낌? 예전엔 연습실 가면 오늘은 뭘 배울까 불안하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근데 '될 것 같다' 하며 희망이 보이니까 연습실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힐링되고 즐거웠다. 되게 재밌었다. 맨날 연습실에서 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거 어떡하지? 맛 들렸는데…' 이런 생각으로 되게 재미있게 했어요. (연습 끝나도) 집에 가기보다 더 있고 싶었어요. 옛날(가수 시절)에 내가 이런 마음으로 했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도 들면서, 뒤늦게 연습실 냄새가 너무 좋더라고요. 내 땀이 묻은 티셔츠 냄새마저 좋았죠. 땀이 안 난 날은 내가 열심히 안 한 날처럼 느껴져서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날씨가 추워져서 땀이 덜 나면, '왜 이렇게밖에 안 했지' 했고요. (연습실 가기 전)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도,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연습실 가면 즐기기 시작했죠. 멤버들하고 웃고 떠들기도 하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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