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앞다퉈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던 각국 중앙은행들이 거세지는 인플레이션 압박에 긴축 채비를 서두며 '매파'(긴축 선호)로 돌변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는 현지시간으로 3일 열린 통화정책위원회(MPC)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0.25%에서 0.50%로 0.25%p 인상했다. 지난해 12월 3년여 만에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한데 이어 2004년 이후 처음으로 두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이다.
BOE는 이와 동시에 만기 채권의 재투자 중단을 통해 8950억 파운드(한화 1460조) 규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시중 유동성 공급도 동시에 중단하며 급격한 긴축에 돌입한 것.
영국이 긴축을 서두르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이 5.4%를 기록하며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데 이어 오는 4월에는 7.25%로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BOE 전망이 나온 상태다.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는 "(인플레이션으로) 금리 인상 없이는 영국 국민들의 소득 감소가 더 악화될 것"이라며 긴축 이유를 밝혔다.
같은날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에서는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그동안 금리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던 ECB은 이날 만큼은 올해 안에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ECB는 회의 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서 안정화될 수 있도록 '적절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상황이 실제로 바뀌었다. 서둘러 결론을 내지 않고 서서히 행동하겠다"며 금리 인상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바꿨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27일 올해 3월 기준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고용시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금리를 인상할 여력(room)이 있다"고 말하면서 향후 매 회의마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FED가 올해 안에 최대 6~7회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도 지난 1월 열린 정례금리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명시해 온 '향후 가이드라인' 항목을 삭제하며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호주 중앙은행은 최근 3500억 호주달러(약 300조원) 규모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신흥국에서는 이미 상당 수준의 긴축이 진행되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기존 9.25%에서 10.75%로 단숨에 1.5%p 인상했다. 멕시코의 기준금리도 지난해 6월부터 5차례 연속 인상돼 5.5%에 달한다. 그밖에 러시아, 칠레, 코스타리카, 스리랑카, 파키스탄, 헝가리, 아르메니아 등도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긴축에 돌입했다.
비교적 선제적으로 긴축에 들어간 우리나라도 향후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열려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과 11월, 그리고 올해 1월 모두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는데, 이번달 말 열릴 올해 두번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준금리를 1.25%로 인상한 지난 1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이주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가운데 3명이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제기했다. 여기다 4일 발표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에 비해 3.6% 상승하며 4개월 연속 3%대 상승을 이어가는 등 기준금리 추가 인상의 명분이 쌓여가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