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이 은행과 거래한 최모씨(70)는 예탁금 5억여 원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2001년부터 모아 온 돈이었다. 최씨는 당시에 지점장인 이 부장으로부터 예금자 보호 한도액인 2천만 원씩 여러 개의 차명계좌를 개설할 것을 권유받았다.
그렇게 2007년까지 23개의 부장과 관련된 차명 계좌에 5억여 원을 모았다. 2년 만기로 예탁이 끝나는 2009년 9월 이 부장은 최씨에게 말했다. "이자 이율이 떨어지니 예탁금을 만기 해지하지 말고 그대로 두고 인출도 하지 말아라. 이자를 한꺼번에 입금해 주겠다"고 유인했다.
10년도 지나 부장이 죽고 나서야 최씨 앞으로 된 대출이 발견됐다. 2007년 예탁금을 담보로 4억 5천만 원이 최씨 앞으로 대출이 받아져 있었다. 만기 2년짜리 예탁금 담보대출이었다. 2009년 예탁금과 대출금이 상계 처리가 되면서 통장은 0원이 됐다.
부장이 죽기 전까지 완벽했다. 정기예탁금에 대한 이자 230만 원이 매달 들어왔다. 매달 17일 타은행 자동인출기(ATM)에서 무통장 입금으로 처리됐다.
숨진 부장이 최씨를 속이고 돈을 횡령한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사망 직전 부장은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에 걸렸다. 직원이 최씨 아내와 관련된 서류를 들고 찾아갈 건데 싸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최씨 아내가 대출을 받았다는 내용의 확인서였다. 최씨 아내는 부장의 말만 믿고 영문도 모른 채 한 쪽짜리 종이에 서명했다.
최씨뿐만 아니라 아내 명의로 된 4500만 원짜리 대출과 아들 명의로 된 마이너스 통장 개설 기록도 확인됐다. 부장이 죽기 전까지 거래 내역이 활발했다.
대출 심사도 헐거웠다. 최씨 일가와 관련된 대출자료에는 모르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 자신이라고 소개하며 대출 승인을 받은 것이다.
예탁금 반환을 위해 가족들은 2020년 11월 민사 재판에 나섰지만, 대부분 기각됐다.
지난 5일 열린 법원의 선고 공판에서 법원은 "예탁금의 만기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후 소가 제기됐기에 이미 시효가 소멸했다"고 판시했다. 최씨가 주장하는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최씨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최씨 측은 "매달 이자가 꼬박꼬박 들어왔기 때문에 10년 동안 예탁금이 만기 해지가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예탁금 담보 대출과 상환 자체를 알지 못했으며, 아내 명의의 받지도 않은 대출의 상환을 떠안게 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씨 측은 "좁은 지역에서 많은 어르신이 우리처럼 피해를 본 것으로 안다"며 "형사 상 고소와 함께 민사 소송에 대한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