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정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위기는 다르다.
우선 27일(현지시간) 진행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간 80분간의 통화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CNN 보도에 따르면 양 정상간 통화에서 불화(at odds)가 있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러시아의 공격이 임박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시점에서 거의 확실하다고 재차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위협은 '위험하지만 모호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면서, 러시아의 공격이 실제로 일어날지 확실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발언 수위를 조절해 달라는 완곡어법이다.
우크라이나 관료들은 두 정상간 통화가 좋지 않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백악관은 CNN보도에 대해 우크라이나 쪽에서 거짓정보를 흘리고 있다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CNN 보도는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현지에서 외신인터뷰를 한 것을 보면 '불화'로 볼만한 여지가 다분하다.
미국이 자국 대사관 직원들을 철수시킨 것을 놓고 "실수했다"고 대놓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말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나는 각국 지도자들과 대화를 시작했고 그들에게 우리 경제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일 전쟁난다'고 말한다. 이건 공황상태다. 금융 시장의 공황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다.
그는 "이 제재들은 우리나라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이는 유럽연합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며 불쾌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스스로 군대를 양성해야 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며 "그러나 우리가 NATO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보다 서방 편에 가까운 젤렌스키 대통령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렇다면 제3자인 바이든 대통령은 왜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일까.
CNN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제스처가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자신이 허를 찔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적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중간 선거를 앞둔 선거 전략이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미국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약하다는 공화당 매파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에서는 이런 바이든의 전략을 눈치 챈 듯하다.
공화당은 "왜 미국이 자국의 지도자보다 러시아의 뒷마당에 있는 나라의 안보를 걱정해야 하느냐"며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역공을 취하고 있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미국과 멕시코간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미 이민자들의 유입사태를 거론하며 "우리집 담장을 걱정해야할 판에 남의 집 담장을 걱정할 때냐"는 조롱까지 내놓고 있다.
CNN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경 입장이 되레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코너로 몰게 되면 '스트롱맨'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가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말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9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이 아니라 '부분적 침입'을 한다면 미·유럽의 제재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발언은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게 '부분적 침입'은 해도 좋다고 허가한 것이냐는 역공을 불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