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일 미국을 향해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지난 2018년부터 중단됐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재개할 방침을 시사했다.
그와 동시에 올해 2월 16일로 다가온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광명성절) 80주년, 또는 4월 15일로 다가온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에 맞춰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북한은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 같은 해 11월 29일 화성-15형 ICBM 발사한 이후로 이 두 가지 카드는 4년 넘게 지난 현재까지 꺼내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다시 살얼음판으로 변할 것으로 우려된다.
핵실험과 ICBM은 2017년이 마지막…풍계리는 기자들 불러 폭파 현장 공개
현재까지 북한의 핵실험은 2017년 9월 3일이 마지막으로, 함경남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려 리히터 규모 5.7의 인공지진을 발생시켰다. 풍계리엔 핵실험장이 있었다.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전략적 핵무력 건설 구상에 따라 우리의 핵 과학자들은 9월 3일 12시 우리나라 북부 핵 시험장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하였다"며 "이번 수소탄 시험은 대륙간탄도로케트 전투부에 장착할 수소탄 제작에 새로 연구·도입한 위력조정 기술과 내부구조 설계 방안의 정확성과 믿음성을 검토·확증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어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 ICBM을 시험발사했고 합동참모본부는 이 미사일이 최고고도 4500km, 비행거리 960km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국 국방부는 이 미사일에 대해 정상각도로 발사할 경우 1만 3천km 이상 비행 가능하다고 추정하면서, 북한이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전운이 감돌았다.
북한도 관영매체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케트는 정점고도 4475km까지 상승하여 950km의 거리를 비행하였다"며 "김정은 동지는 새형의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5'형의 성공적 발사를 지켜보시면서 오늘 비로소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케트 강국 위업이 실현되였다고 긍지높이 선포하시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 달 남짓 지난 2018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 무드가 조성됐다. 그해 4월 27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만나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냈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1주일 전인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7기 3차 전원회의를 열고 다음 날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며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다"는 내용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이란 풍계리를 말한다. 북한은 5월 24일 남한을 포함해 5개국 기자단을 불러 영상 촬영까지 허용하며 이를 폭파했다.
이듬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뒤, 그 해 5월부터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면서도 북한은 사거리 1천km를 넘어가는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등은 발사하지 않았다. 애매한 예외가 있다면 2019년 10월 시험발사한 북극성-3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지난해 9월과 이번 달에 시험발사한 이른바 '극초음속 미사일' 정도다.
전자는 사거리 2천km 이상으로 추정되며, 후자는 화성-12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추진체로 활용했기에 개발하기에 따라선 상당히 먼 거리를 갈 수도 있다. 다만 북극성-3형은 실제 잠수함이 아니라 바지선에서 발사했고, '극초음속 미사일'도 성능이 완전히 검증되진 않았다.
화성-15형 ICBM 또한 고각발사를 통해 1천km 미만 거리에서 실험했는데, 목표를 명중시키는 데 필수적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북한이 실증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화성-15형을 딱 한 번만 쏘고 ICBM 시험발사를 중지했기에 확실히 알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합참 "열병식 준비 정황 포착, 언제 할지는 지켜봐야"…올해 예정된 정치행사들 노린 듯
트럼프 행정부가 물러나고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결국 비핵화 협상은 재개되지 못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별다른 변화가 없자 북한은 결국 '벼랑 끝 전술'을 꺼내든 모양새다.북한은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이 자리에서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을 재포치(재공지)"했으며,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 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공지)했다"고 관영매체를 통해 발표했다.
'신뢰구축 조치'라 함은 앞서 언급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등을 뜻한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비핵화 협상에서도 '우리는 서로 신뢰를 쌓기 위해 미국이 원하는 조치를 어느 정도 단행했는데, 미국은 비핵화를 먼저 해야 대가를 줄 수 있다며 전혀 제재를 풀지 않는다'는 논리를 주장해 왔다.
일단 첫 단계는 열병식으로 관측된다. 그 동안 여러 차례 해 왔으니 비교적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북한은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 16일) 80주년, 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 110주년을 맞는다. 둘은 각각 '광명성절'과 '태양절'이라고 불리는데 특히 태양절은 북한 최대 명절이기도 하다.
정치국 회의에서도 이에 대해 "위대한 수령(김일성)님 탄생 110돐과 위대한 장군(김정일)님 탄생 80돐을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승리와 영광의 대축전으로 성대히 경축하기 위한 당과 국가기관들의 임무를 상세하게 포치하였다"고 언급됐다.
합참 관계자는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박하진 않았지만 북한이 열병식 준비를 하고 있는 정황이 있다"며 "정치행사 일정은 미리 정해져 있는데, 어떤 시점에서 열병식을 고려하고 있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만약 둘 중 한 날짜에만 열병식을 연다면, 4월 15일 태양절일 가능성이 높다. 더 중요한 날이라서다.
8차 노동당 대회 당시 전략무기 개발 공언…어렵다면 구색이라도 맞출까
열병식 이외에, 또는 다음으로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지난해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언급됐던 전략무기 개발 가속화다.당시 북한은 핵무기 소형경량화와 전술무기화,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또는 활공비행체, HGV) 수중 및 지상발사식 고체엔진 ICBM, 핵잠수함, 군사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등을 거론했었다.
이 가운데 전술핵무기에 해당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들을 2019년 5월부터 올해 1월 17일까지 여러 차례 시험발사했고, HGV 또한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시험발사한 뒤 '성능을 최종 확증했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고체연료는 아닐지언정, 액체연료를 로켓에 미리 주입해 뒀다가 쏠 수 있는 앰풀(ampoule) 기술도 검증했다고 밝혔다.
고체연료 ICBM 기술을 앰풀화로 대체한다고 치면, 남은 일은 핵잠수함과 군사정찰위성 그리고 무인정찰기 등인데 하나하나가 난제다. 우선 핵잠수함은 원자로를 잠수함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해야 하며, 여기에 SLBM을 실어 험한 바닷속 환경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소형 SLBM을 시험발사했는데 당시 공개된 발사 플랫폼은 2016년 8월 북극성-1형 SLBM 발사에도 쓰인 2천톤급 고래급 잠수함이었다. 2019년 7월 사진으로 공개된 신형 잠수함도 2천톤급 구형 로미오급을 개조했다고 추정된다.
1954년 진수된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인 USS 노틸러스가 4천톤급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무턱대고 2천톤급 잠수함을 개조해 원자로를 탑재하기는 어렵다. 본래 재래식과 핵추진 잠수함은 처음부터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들 평가까지 감안해 보면, 아예 잠수함을 새로 만드는 수준이어야 한다.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해군력이 심각하게 뒤처져 있는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최첨단 광학기술 등이 필요한 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핵무기 자체가 본래 '사용되지 않는 일이 진짜 목적'인 정치적 무기인 만큼, 실제 기술적으로는 좀 모자랄지언정 그런 대로 봐줄 정도 구색은 갖춘 전략무기들을 차차 공개할 가능성은 있다. 화성-15형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발사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다만 이번 정치국 회의에서 핵·미사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고, 발사유예 조치 철회도 아직은 '검토' 단계라는 점에서 일정한 여지는 남겼다고 해석된다. '벼랑 끝 전술'엔 여러 방법이 있는 만큼, 일부러 언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행동을 결심하겠다는 모양새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검토'라는 표현은 미국의 반응에 따라 핵·미사일 관련 행동의 속도와 폭을 조절하겠다는 뜻"이라며 "행동은 SLBM, (준)중거리 탄도미사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핵실험 순으로 점점 강도를 넓혀 갈 것이며 베이징 동계올림픽, 한국 대선, 미국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