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계에서 즉각 지지한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의료계에선 여전히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언제나 국민 곁을 지키는 간호사분들을, 이제는 이재명이 지키겠다"는 말과 함께 '간호법' 제정의 포문을 열었다.
같은날 윤석열 후보도 대한간호협회와의 간담회를 열어 "간호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힘쓰겠다"고 밝히며 해당 법 제정을 약속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간호법 제정을 호소하는 청원이 게재되기도 했다.
청원인은 "전체 의료인 10명 중 7명인 간호사의 일터에는 업무 경계, 역할의 기준이 될 간호법이 없다"며 법의 부재로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해당 청원은 일주일만에 20만명이 넘는 동의를 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1951년에 제정된 법…제도 보완 마련 목소리 꾸준히 이어져
법 제정 논쟁은 지난 1970년에 촉발됐다. 김모 양이 의사 처방을 받은 간호원 김모씨의 주사를 맞다, 그만 쇼크로 숨진 것.
당시 의사 입회 없이 주사행위를 한 것을 두고 김씨는 '의료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이에 전국 간호사들이 일제히 반발하며 나섰고 '진료의 보조', '의사가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등의 모호한 법 조항에 논쟁이 가열되기도 했다.
'진료의 보조'의 내용은 현행 법에서도 고스란히 나와 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의료법 제2조(의료인)에 따르면 "간호사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돼 있다.
국회에서는 지난 2005년 당시 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과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각각 '간호사법'을 대표발의해 논의됐지만, 당시 의료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후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는 지난 2013년 7월부터 '간호법 제정을 위한 100만 대국민 서명운동'에 나섰고 지난 2019년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각각 '간호법', '간호조산법'을 발의했다. 당시에도 의료계 반발과 타 법안에 밀려 해당 법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해당 법의 주요 골자는 △5년마다 간호종합계획 수립 및 3년마다 간호사 등에 관한 실태조사 실시 △간호인력의 수급 및 근무환경을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시책 수립 및 지원 △지역별로 간호인력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인권침해행위 방지를 위한 조사 및 교육 의무화 등이다.
간협은 병원·보건소·산후조리원 등 간호사가 필요한 곳은 많지만 현행 의료법의 한계로 다양한 장소로의 업무 확대, 간호 업무 전문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사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현행 법과 달리 간호사는 의료기관 뿐 아니라 학교·노인복지시설 등 다양한 환경에서 넓게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학교보건법, 노인복지법 등 90여 개로 흩어진 간호법령을 통합·관리하기 위해서라도 간호법이라는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직 간호사인 이모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저희한테만 득이 되는 게 아니다"라며 "10명의 환자를 보다가 5명의 환자를 보면 두 번, 세 번 가서 봐줄 수 있지 않냐. 당연히 환자한테도 간호의 질이 훨씬 높아지는 장점이 생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전국간호대학생간호법비상대책본부 박준용 본부장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될 내용을 합의해서 도출해야 되는 주체는 행정부 안에 있는 보건복지부"라며 "대선 후보뿐만 아니라 여야 모두 협조하는 상황이어서 법 통과까지 잘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의협 "의료 체계 후퇴" vs 간호계 "의료법 그대로 담은 것"
대한정형외과의사회는 지난 7일 발표한 성명문에서 "의료계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간호법'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되고 있는 모든 의료인이 상생할 수 있는 지원 법안 및 정책이 시급하다"며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에만 초점을 맞춰 특정 직역만을 위한 법안으로 의료인 간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간호법이 과연 국민건강을 위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도 "간호법안은 의료체계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며 △면허제 근간의 현행 보건의료체계 붕괴 △간호사 업무범위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 △의료관계법령 체계의 왜곡 등으로 국민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악법"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CBS노컷뉴스에 "(간호계 쪽에서 얘기하고 있는) 근무환경, 인권 문제, 환자 관리 등의 개선은 의사들도 필요하다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태"라며 "이 부분들은 사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도 다 들어가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기존 의료행위는 의사나 간호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다"라며 "여러 명이 같이 각각 다른 직역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의료'이기 때문에 의료법이라는 총괄적인 범위 안에서 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간호법의 가장 큰 문제는 특정 직역이 원래 면허로 규정되어 있던 것 이상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의 상황보다도 의료 자체가 후퇴할 것이고 환자들도 더 많은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간호사의 단독으로만 하는 (의료)행위들을 받게 되는 부분들이 생겨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 교수는 이어 "간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간호법 안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며 "의료법 안에 있는 간호에 간호사와 관련된 규정들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도 "실제로 간호사가 병원에서 수행하는 상당히 많은 행위들을 보면, 의사가 시비를 걸면 언제든지 (현행)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며 "간호사 책임이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국면 속에서 의사들이 파업했을 당시에도 현장에서는 누군가는 응급 상황을 커버해야 했다"며 "간호사들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현행법상으로는 모두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간호법을 만들어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을 좀 구분하자는 취지"라며 "우리나라처럼 의사의 독점권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간협 측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의사 고유의 업무 영역을 침범할 것이라는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간호법은 간호사의 역할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닌 업무범위를 정립해 간호사를 보호함과 동시에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