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의원단이 지난 17일 홈페이지와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보도자료의 일부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추진 중인 대선후보 양자토론이 군소정당에는 공정하지 않을뿐더러 현행법을 위반한다는 주장입니다.
정의당의 이 설명은 그 뒤 여과 없이 각종 언론보도로 노출됐습니다. 다음 날 '서울경제' 8면 2단에는 따옴표 속에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양자토론이 "명백히 방송법에 반하는 행위"라는 명제는 과연 사실일까요.
내달 3차례 법정토론엔 '기준 명시'
선거 후보자에 대한 대담이나 토론회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먼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개최하는 이른바 '법정토론' 방식입니다. 공직선거법(제82조의2)에 따라 꽤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즉 선거일에서 약 3주 전부터 선거 전날까지만 가능한데요. 이번 대선에서는 2월 21일(경제), 2월 25일(정치), 3월 2일(사회) 등 3차례 예정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초청 후보자 기준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대선의 경우 ①국회의원 5인 이상 소속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②직전 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 3% 이상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③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가 대상입니다. (선거기간 개시일 전 30일부터 선거기간 개시일 전날까지 실시해 공표한 조사만)
3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된다니까 지금 추세라면 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아마 포함될 것 같습니다.
선관위 "언론 주최 토론회는 자율로"
그러나 이렇게 까다로운 3차례 토론만으로는 후보자의 면면을 소상히 파악하기 어렵겠죠. 때문에 언론사 주최 토론회가 정치권에선 특히 주목되고 있습니다.형식이나 구성이 비교적 자유롭고 대선의 경우 선거 1년 전부터 선거 전날까지 아무 때나 열 수 있거든요.
관련 규칙(공직선거관리규칙 제45조)을 살펴봐도 특정 후보만 계속 초청하지 말고 토론자 간 분량을 잘 배분하라는 정도만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토론을 이렇게 언론사가 주최할 경우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추진하고 있는 양자토론도 공직선거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 기관은 후보자 초청 기준이 따로 있지 않으므로 각자가 정한 공정한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초청해서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밖에 단체(노동조합이나 후보자 가족이 임원으로 있는 경우는 제외)에서 토론회를 직접 열 수도 있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양당 압박 전략?
언론사가 주최하면 양자토론이 가능하다는 걸 정의당도 모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보도자료 작성의 주체인 '의원단' 소속 장혜영 의원만 해도 법정토론(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과 언론사 토론을 구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원문 |
◆ 장혜영> 중앙선관위가 정해놓은 법정 TV토론이라고 하는 것에 기준이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직전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를 했거나 아니면 국회에서 5석 이상을 가지고 있거나 이런 정당의 후보인 경우에는 명확하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 건데요. 이렇게 명확하게 법적으로 정해 놓은 기준을 뛰어넘어서 양당의 후보들이 자기들끼리만 토론을 하겠다라고… (중략) ◇ 김현정> 물론 법정 토론 3회 안에는 들어가겠지만 법정 토론 전에 있는 토론회에도 거기에 준해서 뭔가 대우를 해 줘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그 말씀이세요? ◆ 장혜영> 그렇죠. 왜냐하면 중앙선관위는 말 그대로 어떤 기준을 정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것이 설령 의무적으로 강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의 알권리, 내지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약자들의 목소리도 소외되지 않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하는 취지를 존중해야 하는 것인데요. |
그럼에도 정의당이 이렇게 '불법'이라고까지 몰아붙이는 데에는 양당과 주최 측을 압박해 어떻게든 토론에 참여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습니다.
바로 직전 대선이 있었던 2017년에도 정의당은 KBS 주최 토론에 초청되지 못했었지만 지속적으로 항의한 끝에 결국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었거든요.
당시 KBS는 자사 선거방송 준칙에 따라 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미래당 유승민 후보만 초청했다가 심상정 후보 측 문제 제기 이후 중앙선관위 기준을 적용하기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물론 이렇게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자기들끼리만 대중 앞에 선다면 양강 구도 강화를 부추길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장 유세가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요.
나아가 여론조사 지지율이 대체로 10%를 넘어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까지 배제되는 상황이 다원 민주주의 취지에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방송은 의견이 다른 집단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방송법 제6조까지 굳이 끌어오면서 정의당이 핏대를 세우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정의당 이동영 수석대변인 역시 CBS 팩트체크팀에 "법적인 부분은 더 검토해봐야겠지만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취지로 보도자료를 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양자토론을 '명백히 방송법에 반하는 행위'라는 정의당 의원단 주장은 <대체로 거짓>이라고 판정하겠습니다. 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과 명백한 불법은 엄연히 다른 얘기니까요.
가처분 소송 이어질까
'완전 거짓'으로 판정하지 않은 건 불법의 여지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법원이 대선 토론 참여 대상에 제동을 걸었던 사례도 있습니다.지난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KBS와 MBC가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무소속 이회창 후보 대상 3자 토론을 준비하다 무산된 바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각각 법원에 냈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거든요.
물론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대선은 아니었지만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새누리당 정몽준,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 대상 양자토론의 경우 통합진보당에서 냈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했습니다.
이번 대선의 양자토론 이슈도 법원 판단에 맡겨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방송금지 가처분 소송을 적극 검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송전이 펼쳐질 경우 재판부는 양자 간 치열한 토론을 바라는 방송사의 자율권과 기회균등 원칙 사이에서 고심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