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예닐곱 번 거쳐 왔지만, 이번 대선은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모조리 잊으라 한다. 기사 쓰는 일을 잠시 멈췄을 때 이번 대선을 디테일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글을 쓰려니 하루에도 몇 번을 적었다, 지웠다 하기를 반복한다.
이번 대선 판은 아무리 쳐다봐도 힘겹다. '나는 평론가가 아니다'라고 거듭거듭 다짐하지만 새 현상을 해석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멸공'과 '여가부 폐지', 일부 이대남들의 극우적 성향, 탈모 공약 등.
논란 하나하나가 이유·원인이 없이 솟아난 이슈는 아닐 것이다. 그간 한국사회의 성격과 세대변화, 자본의 발달, 팬데믹 영향 등의 요소가 뒤섞여 그 결과로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20대 선거는 선거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사례"라며 다음과 같이 4가지 특색을 말한다.
1. 선진국에서 태어난 2030세대가 유권자 파워로 올라 유권자 지형이 바뀌었다.
2. 정당과 일체감 없는 '0선 후보'가 당선돼 정당이라는 조직이 힘을 못쓴다.
3. 팬데믹·AI시대 대통령 후보들이 내세우는 이슈도 과거에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4. 스마트폰 선거로 후보들이 과거 어느 정치인보다 혹독하게 노출된 선거다.
어느 교수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저는 학교에서 세 세대를 경험했습니다. 첫 세대는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저항을 통해 형성돼 그들에게 민주주의가 중요했습니다. 두 번째는 번영의 시대에 성장한 세대입니다. 1980년대 세대이죠. 90년대 태어난 세대는 세 번째 세대입니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인데, 이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한국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인즉슨,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전통·문화, 가치관과는 다른, '기존 한국인' 다운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자본주의, 산업 변화, 한국 사회 토대가 변했다는 점부터 수긍해야 새로운 대선판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팬데믹은 변화를 초고속으로 추동하고 있다. 이 점에서 미국 어느 기업가의 말은 매우 현실적이다.
"코로나가 타임머신 역할을 했다. 2030년을 2020년으로 가져왔다."
거대 담론 vs 멸공
기성 언론은 대선에서 거대 담론이 사라졌다고 개탄한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거대 담론이 전무한 건 아니다. 이재명 후보의 '성장'이나, 윤석열 후보의 '멸공'은 거대 담론적 성격을 분명히 가진 주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나, '747정책'이나, '행정수도 이전'처럼 기존 대선판을 거대하게 지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숏폼(짧은 콘텐츠)이나 밈 형태로 짧고 경박하게 소비될 뿐이다.그 이유가 뭘까?
첫째는 유권자가 이제 거대 담론 소비에 지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간 한국의 국력과 권력·부, 자유, K문화, 정치적 양극화, 세대분열, 착취·불평등, 불로소득 등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었지만, 큰 담론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사람들 평가가 아주 인색하다. 불만족스럽거나 회의적 경향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인터넷 하위 문화의 전성기 구가를 주목해야 할 듯 같다. 2022년 대선 판에서 구애를 가장 많이 받고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유권자 층은 20대 남자, 이른바 '이대남' 이다. 이들 결집 현상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30세대는 취업·부동산 등에서 좌절을 크게 호소해 왔다.
이 점을 국민의힘은 약아빠지게 활용하고 있다.
언젠가 분열과 증오·갈라치기가 사회에 환원될 '부메랑'이 될지라도 자신들은 감당할 몫과 책임이 전혀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증오라는 것은 너무도 강렬한 빛을 발사해서 그 속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사라지는 법이다. 국민의힘은 일간베스트, 즉 일베에서 시작된 놀이 문화를 선거 기획에서 적극 활용한다.
일베 시스템은 경쟁 압력이 아주 세다. 초대형 커뮤니티에 올린 글은 추천을 많이 받아야 일간베스트 게시물이 되고, 레벨이 올라가는 구조다. 상위에 랭크되려면 가혹한 유머 코드를 생산하고 무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멸콩'의 해시태그 방식도 일베 극우층의 전형적인 게임 방식 또는 놀이 방식의 하나라는 평가가 많다.
기획은 '7자 제목' 일베 놀이 방식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봉급 월 200만원'처럼. 그들은 7자 제목만 미끼로 툭 던지고 '온라인 놀이터'를 만든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울타리도 없고 규칙도 없다. 사람들을 마구 유인한다.
놀이터는 찬반을 논하는 공론장인 것처럼 포장돼 있다. 게임의 목적은 단 하나다. '분열과 증오의 늪 속'에서 사람들이 헤매게 만드는 것이다. 8·90년대라면 야바위 노름과 대동소이하다. '배설장'으로 퇴락한 놀이터를 실컷 떠들썩하게 만든 다음, 떠나는 야바위 꾼은 유유자적 후기를 남긴다.
"웃자고 한 일에 돈을 잃고 왜 시비냐."
나중시대 vs 20대 유권자 파워
2020년대를 '나중시대'라고 한다. 내가 중심이 되는 '나중시대'라는 것이다. 사회 트랜드는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오롯이 각자의 몫이 된 시대라고 한다. 우리, 가정, 공동체는 모두 분해되는 시대다.이에 발맞춘 대선 후보들의 정책·공약도 '개별맞춤' 시대다. 이재명은 '소확행'이라 명명했고, 윤석열은 '심쿵'이라 이름 지었다. 탈모와 택시기사 보호 칸막이 설치 같은 생활 밀착형 공약이래야 유권자의 매력을 끈다.
반면, '나중시대'라 하지만 20대 유권자 집단을 향한 표심은 아이러니다. '이대남·이대녀'가 어느 규모로 집단적 결속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으나, 여튼 대선 판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파워집단이 됐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에 투신해 영향력을 직접 행사하고 일부는 그 영향력 아래로 동조하고, 또 일부는 개별적 표심을 행사할 것이다.
2022년 대선판은 도무지 과거 기준과 잣대로 판별·이해할 수 없는 장이 됐다. 이 분석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여서 내 멋대로 해석했다는 악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많은 착취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엄청난 규모의 자유가 가능하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다. 반대로 한국 사회는 엄청난 규모의 자유가 가능하고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지만 많은 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분열과 증오가 존재하지만 그 분열과 증오를 해결할 수 있는, 연대를 회복하는 공론의 장도 필요하다. 대선이 그 역할에 충실하기를 희망한다. 갈라치기는 부메랑이 되어 꼭 되돌아오게 돼있다.
'2022년 트랜드 코리아'가 온통 '나노사회' 특징을 설파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도 적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공감했다.
"나노사회의 메가트랜드 아래에서 선거의 해 2022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분열의 길이냐, 연대의 길이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공감력을 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