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천재 수학자와 이를 파헤치는 천재 물리학자의 뜨거운 대결을 담고 있다.
소설대로라면 3월 초순, 아직 쌀쌀한 날씨에 출근길에 나선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가 출연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소설과는 다른 초반으로 눈길을 모은다. 바다에서 대형 선박이 갑자기 폭발한 사건을 놓고, TV 뉴스에서 아나운서와 국방 관련 전문가가 그 원인에 대해 대담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일본드라마 ''''갈릴레오''''도 원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후지 TV에서 2007년 10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방송된 작품으로, 평균시청률 20%대를 기록했던 인기 드라마였다.
흥미롭게도 ''''갈릴레오''''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 편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의 단편 소설집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에 있는 에피소드가 각본에 녹아있다. 이 드라마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열혈 여형사 ''''우츠미 카오루''''와 함께 얼핏 수수께끼처럼 보이지만, 사실 과학적인 해답이 숨어 있는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해 가는 내용이다.
보통 11회로 종방하는 ''''일드''''지만, 10회로 마무리된 ''''갈릴레오''''는 시청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2008년, 1부작 스페셜 드라마를 내놓았다. 바로 ''''갈릴레오 제로''''다.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의 대학 시절 에피소드를 중점적으로 다룬 이 드라마는 영화 ''''용의자 X의 헌신''''과 2008년 10월 4일, 같은 날 선보이는 윈윈전략을 구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드라마는 20.8%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영화는 첫날부터 몰아친 흥행력을 4주 연속 일본박스오피스 1위라는 성적으로 이어갔다. 스페셜 드라마 ''''갈릴레오 제로''''는 마지막 부분에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 고리를 배치했다.
다름 아닌,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TV 뉴스 장면을 넣은 것이다. TV 뉴스에 나온 국방 관련 전문가가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는 체하며 말하자,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곧바로 이를 비웃는 장면을 배치했다.
그런 뒤, 제작진은 다음 화면에 이런 자막을 큼지막하게 띄우고 있다. "다음은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영화의 도입부가 소설과 다른 내막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켜, 이 영화는 먼저 대형 선박 폭발 사고의 원인을 ''''유카와 마나부''''교수의 아주 친절한 설명 속에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원작 소설에 충실한 전개로 이어진다. 단, 사건을 풀어가는 것은 소설처럼 ''''유카와 마나부''''와 ''''쿠사나기''''형사가 아니다. 드라마 ''''갈릴레오''''의 콤비인 ''''유카와 마나부''''와 ''''우츠미 카오루''''다.
이 천재 물리학자와 여형사가 왜 사건을 같이 풀어가는 것인가에 대해,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단계를 생략했다. 드라마의 팬들이 영화 관객으로 흡수됐다는 전제 하에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쿠사나기''''형사는 신참인 ''''우츠미 카오루''''에게 자신의 대학 동창생인 ''''유카와 마나부''''를 소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쿠사나기''''는 온갖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척척 해결한 베테랑 형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자신의 이런 명성이 대학 시절부터 천재로 통했던 ''''유카와 마나부''''의 힘을 빌린 것임을 그녀에게 고백한다. 이런 포석을 드라마에 깔아 두었으니, 영화에서 새삼스레 그가 중심인물로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드라마 ''''갈릴레오''''는 ''''유카와 마나부''''와 ''''우츠미 카오루''''가 티격태격하는 설정을 작품의 재미로써 장치했다. 그는 사건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으려 하고, 그녀는 어떡하든 그를 사건 해결에 끌어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각각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대비되는 두 사람의 귀여운 공방전은 시청자들에게 작지 않은 흥밋거리를 유발했다. 그러나 영화에선 이런 재미는 덜어냈다. 소설 원작에 무게감을 두고, 두 천재의 대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드라마 ''''갈릴레오''''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거의 그대로 투입돼, 원작드라마 팬들에게는 일찌감치 기대감을 주었었다. 상당히 잘 만들었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서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대거 극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지난 8일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일본배우 이토 타카히로(伊藤隆大, 21)는 이번 영화에서 그야말로 단역으로 출연해 존재감을 찾기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