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먼저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24일 국방 분야 공약을 발표하면서 선택적 모병제 도입과 함께 "병사 월급을 오는 2027년까지 20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입니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라는 한 줄 공약을 내놓더니, 바로 다음날 "최저임금으로 보장하면 연간 5조 1천억 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2030년부터 한국형 모병제 실시와 함께 병사 초봉 3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후보별 방식이나 속도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최저임금 수준으로 병사 월급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큰 틀에서 합의된 것으로 보입니다. 올 3월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다음 정부 임기 내 병사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까지는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진 겁니다.
그래서, 돈 주는 데 필요한 돈은 얼마?
윤석열 후보 측은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상하려면 5조 1천억 원이 필요하다. 재원은 예산 지출 조정을 통해 마련한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국가 예산이 607조 원 정도인데 이 중 '재량 지출', 그러니까 의무적으로 쓰는 것이 아닌 돈이 300조 원 정도라 충분히 구조조정을 하면 5조 원 정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5조 1천억 원은 어떻게 나온 숫자일까요. 국민의힘 선대본부는 "현재(2022년) 병사 인건비가 2조 1천억 원인데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모든 병 계급의 월급을 최저임금 이상 줄 경우를 가정하면 7조 2천억 원까지 증가한다"며 "현재와 차이가 5조 1천억 원이고 취임 즉시 시행할 계획이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올해 병장 월급 67만 6100원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높이는데 약 3조 9천억 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합니다. 모든 계급의 월급을 높이는 윤 후보 방식보다 조금 적은 돈이 필요하죠.
아직까지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을 밝힌 적이 없는 이재명·심상정 후보도 수조원대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데 이견은 없는 상탭니다.
"월급 올리고 식비·피복비 공제" 대안도
현재 국군 중 간부를 제외한 병사는 29만 2천 명 정도. 병력 규모를 줄이지 않고 월급 200만 원이 가능하려면 예산 자체를 큰 폭 늘려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세출 구조조정(윤 후보)은 가능하더라도 임시 방편에 불과합니다.필요한 돈의 규모를 줄이는 방식이 정치권에서 이미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지난해 11월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피복비·식비 등 생필품을 공제하자"고 제안한 겁니다.
성 의원의 말처럼 병사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보장하되 현재 무상으로 제공하는 의식 비용을 공제할 경우, 월급 인상에 필요한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윤 후보 안의 경우 5조 1천억 원에서 3조 5천억 원으로 30% 넘게 감소하고, 정부 추산 3조 9천억 원은 40% 넘게 줄어든 2조 3천억 원 정도면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병장 기준 월 실수령액이 현재 67만 원에서 60만 원 안팎으로 늘어난 120만 원선까지 늘어납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중기 국방계획(2027년 병장 월급 100만 원)과도 인상 속도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강제로 군대에 끌려간 것도 억울한데 입고 먹는 돈까지 내야 하느냐"는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각 후보 캠프 측에서 이런 대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은 상태입니다.
역대 정부 인상률 보니…'노무현·문재인' 압도적으로 높아
본격적으로 병사 월급이 오르기 시작한 건 노무현 정부 때부터입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1만 원 대에 머물렀고 김대중 정부 때는 외환위기 여파로 동결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2만 3100원으로 시작해 임기 말 9만 7500원으로 3배 넘게 끌어올렸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년간 동결했다가 이후 3년 동안 올려 30% 정도 인상률을 보였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매년 15% 정도씩 월급을 올렸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첫해 80% 넘게 병사 월급을 높였고 임기 말 67만 원 선까지 끌어 올리며 국정과제(2017년 기준 최저임금의 50%)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병사 월급 인상 논의가 본격화하자 역차별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현재 하사와 소위도 월 200만 원을 받지 못하는데 병사 월급 인상 목소리만 높다는 겁니다. 올해 하사 1호봉은 월 170만 원대, 소위 1호봉은 175만 원대 정도입니다.
윤석열 후보가 페이스북 공약을 내놓자 곧바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부사관 월급이 200만 원이 되지 않는데 부사관 장교 월급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도 이런 시각과 같은 맥락입니다.
포퓰리즘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200만 원 공약에 대해 "헛소리" "군대를 안 가봐서"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 "병사 월급 올릴 때 됐다"…현실성 고려 필요 목소리도
서경대 군사학과 정희태 교수는 "과거처럼 무조건 국방 의무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했고, 극동대 군사학과 이진혁 교수도 "큰 틀에서는 병사 월급 200만 원에 동의한다. 병력 감소세를 보면 언젠가 모병제 전환은 불가피하고 적절한 수준의 임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시기와 속도를 두고는 견해가 엇갈렸습니다.
이 교수는 "곧바로 200만 원까지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함께 상승할 간부 임금이나 전력 증강 예산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반면 정 교수는 "우리 경제 규모도 성장했고 현재 국방비 규모를 고려한다면 여력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