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도서관·스터디카페에 대한 '청소년 방역패스'는 법원에 의해 효력이 정지됐고, 식당·대형마트 등 다른 업종에 대해서도 줄줄이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방역패스가 개인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문제 제기와 공공 방역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대책이라는 정부의 반박이 맞부딪히고 있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많은 논란은 같은 사안을 다르게 보는 시각차에서 비롯한다.
해외서도 법정에 선 '방역패스'…한국보다 엄격한 곳 많아
해외에서도 방역패스를 놓고 찬반 격론과 함께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등 홍역을 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캐나다 등 많은 국가에 다양한 형태의 방역패스를 도입하고 있다.
각국의 문화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방역패스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내용을 보면 한국보다 훨씬 강도 높은 곳도 많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약국이나 슈퍼마켓 등 일부를 제외한 실내시설에 방역패스가 적용된다.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선 접종이나 완치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6~12세도 방역패스 대상이다.
이탈리아는 12세 이상이면 방역패스를 제시해야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영국은 18세부터 방역패스가 적용된다. 18세 미만은 실내시설이나 대규모 행사에 출입할 때 별도 방역패스를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은 주별로 다르지만 뉴욕의 경우 식당, 공연장, 체육관 등 실내시설에 들어가기 위해선 5~11세도 한번 이상 백신을 맞았다는 증명서를 보여줘야 한다.
다만, 이들 국가에서도 방역패스의 구체적인 기준과 범위를 두고 기본권 침해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백신 미접종자들에 한해서 정말로 그들을 꺼지게 하고 싶다"면서 "백신 미접종자를 귀찮게 하고 싶고 이를 끝까지 계속할 것이라는 게 바로 전략"며 노골적인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법원 내 코로나19 검사 의무화 논란이 일었지만 법원이 방역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칠레 고등법원은 법원이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하는 게 합당하다고 결정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연방 공무원 백신 의무화 행정명령이 법원에 의해 저지됐다. 미 국방부가 현역 군인의 백신접종을 의무화하자 35명의 부대원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 행정명령에 대한 예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일상생활이 어렵다" vs "한국은 예외조항 많다"
해외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의 방역패스가 더 엄격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서도 방역패스 반대론이 적지 않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은 최근 집행정지 신청이 일부 인용된 학원 등 '교육시설 3종'에 이어 대형마트와 식당·카페 등 17종에 적용되고 있는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해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포함한 시민 1천700여 명도 헌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조 교수 등은 "백신 접종률은 세계 최고 수준(94%)인 반면, 마트나 영화관은 가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6%에 불과한 미접종자 수치를 제고해 얼마나 효과가 나타나겠냐"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반면 정부에서는 해외 사례와 견줘 기본권 침해를 줄이기 위한 방역패스의 예외 조항이 많다고 항변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접종자 1인에 한해 방역패스 없이 '혼밥'을 할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마트·상점 같은 경우도 다수가 밀집하는 것으로 보이는 3000㎡(약 909평) 이상의 대형마트 2천 개소만 적용하고 있다"며 "실제 생활에서 생필품 구매가 어려워지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미접종자에 대한 일체 예외 없이 접종완료자, 코로나19 완치자만 방역패스를 인정해주는 독일을 비교대상으로 꼽았다.
국내의 경우, PCR(유전체 증폭) 검사 음성확인자와 만 18세 이하 청소년, 의학적 사유로 백신 접종을 마치지 못한 미접종자 등을 예외로 두고 있다.
'대중교통 방역패스' 놓고는 뒤바뀐 공수
대중교통에 대한 방역패스를 놓고는 형평성 문제가 나온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밀집도가 높은 교통수단이 대형마트, 영화관 등이 다른 장소와 비교되면서다.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는 대중교통까지 방역패스를 적용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는 "출퇴근 시 지하철은 더 위험하다. 밀도가 너무 높은 데다 환기도 안 되지 않나"라며 "이렇게 과학적이지 않은 방역은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형평성에 대한 지적은 '방역패스 구멍'이라는 비판을 넘어 '방역패스 무용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빽빽한 지하철이 다른 곳보다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느냐. 대중교통을 그냥 놔두면서 다른 곳을 아무리 해봐도 의미가 없다"는 식의 주장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방역패스 무용론자들의 이런 주장은 대중교통 방역패스의 필요성과 맥을 같이 한다. 반면 정부는 과도한 기본권 침해 때문에 예외를 뒀다는 입장이다.
손 반장은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 보장 측면을 고려하고 직장에서의 고용상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면서 "현실성 문제를 떠나 (실제로) 적용하게 될 경우 정말 일상생활 자체에 차질이 생길 정도의 큰 기본권 제약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역패스가 필요없다'는 무용론자들과 '반드시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이 여기선 정반대로 향했다.
방역패스 논란, 왜 사그러들지 않나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방역패스의 효과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방역패스 논란이 쉽게 사그러들기 어려운 이유는 그 효과를 계량화해서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6일 식당.카페 등에 대한 방역패스 효과가 2주 시차를 두고 같은 해 12월 3주차부터 확연히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백신 접종률 상승과 사회적 거리두기(사적모임 수도권 6인·비수도권 8인 제한) 등과 겹쳐 나타난 효과다.
정부는 방역패스 효과가 주효했다고 하지만,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효과가 있더라도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인지를 놓고는 계속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방역패스 적용 시설마다 성격과 감염 발생 정도가 다르다는 점도 정부의 정교한 접근을 요구한다.
방역패스는 공공 방역과 기본권 침해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접점을 찾아야 할 문제가 됐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저는 주변에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방역패스가 중요한 유행 통제의 툴(tool)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기본권 침해"라며 "미국에서도 (백신패스 관련 소송에서) 판사들이 '이런 사안은 행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헌법을 넘어서는 조치들은 국회에서 논의하든가,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