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크루(임직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투명한 경영활동을 통하여 주주와 기타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카카오페이 홈페이지에 소개된 '윤리강령 제8조(주주가치 극대화)' 내용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윤리강령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며 한창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모회사 카카오 대표로 내정됐다 10일 자진사퇴 의사를 밝힌 카카오페이 류영준 대표는 지난해 12월 10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통해 취득한 자사 주식 23만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로 매각했다. 1주당 매각 대금은 20만 4017원으로, 총 매각 대금은 469억원에 달한다.
류 대표와 함께 카카오페이 대표로 내정된 신원근 전략총괄부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8명이 이날 같은 방식으로 매도한 자사 주식은 44만주로 모두 900억원에 달한다. 카카오페이의 사업확장과 성공적인 IPO(기업공개)를 이끈 주역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행사해 얻은 수익이라는 점에서 전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경영자로서의 책무나 도덕성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다르다. 우선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들이 주식을 매각한 시점이다.
류 대표 등이 주식을 대량 매각한 12월 10일은 카카오페이가 코스피200에 편입된 날이다. 코스피200 편입이 발표되면 선물, 옵션,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양한 금융상품의 기초지수로 활용돼 패시브 자금(지수 추종 펀드 등의 자금)이 유입되며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1월 3일 상장된 카카오페이는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장과 동시에 코스피 시가총액 14위에 올라섰고, 같은달 25일 코스피200 특례편입이 확정됐다. 이날 종가기준 카카오페이 주가는 18.31% 급등했다.
이후 같은달 30일에는 카카오페이 주가가 장중 24만 8500원을 돌파하기도 하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차익실현 매물로 인해 하락하기는 했지만 코스피200 편입일까지 주가는 20만원 선에서 움직이며 추가 상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카카오페이는 후자에 속한다. 특히 류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이 자신이 이끄는 회사가 상장한지 한달여만에, 그것도 코스피200 편입일에 단체로 자사 주식을 대량으로 처분하면서 주가 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경영진의 주식 대량 매도 소식이 알려진 뒤부터 주가는 우하향을 거듭해 한달이 지난 10일 현재 15만원 선을 밑돌고 있다. 한달전 대비 25%에 이르는 하락률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 기업으로서는 단기간에 이례적인 하락폭이고, 시가총액 순위도 10일 기준 20위로 밀려났다.
이처럼 시장이 '경끼' 수준의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경영진이 보유 주식을 대거 내다파는 행위는 시장에서 대형 악재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코스피200 편입이라는 호재로 그동안 주가가 상승했는데 정작 편입일에 경영진의 주식 대량매도는 시장에 이미 주가가 고점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적자기업인 카카오페이가 단숨에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의 기업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을 기반으로한 성장성이 바탕이 됐다. 그런데 이런 성장성을 확인시켜줘야 할 경영진은 오히려 보유 주식을 내다팔아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경영진의 책무나 도덕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초 주주들이 걱정했던 부분은 카카오페이 지분 38.68%를 보유한 중국 기업 알리페이였다. 보유 지분 가운데 보호예수가 걸리지 않은 28%의 지분이 언제든 시장에 풀릴 수 있기 때문에 상장 전부터 불안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경영진은 상장설명회를 통해 "알리페이는 사업 시작 초기부터 전략적 투자자로서 많은 영역에서 협업해 왔으며, 장기적 파트너십을 맺고 같이 사업을 진행해 왔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단기적 지분 매각은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투자자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얼마뒤 차익실현에 나서며 투자자의 뒤통수를 때린 것은 알리페이가 아닌 경영진이었다.
다시 카카오페이의 윤리강령으로 돌아가보면 이들 경영진은 결과적으로는 주주와 기타 이해관계자의 가치 극대화는 내팽개친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한 모양새가 됐다. 물론 이들 경영진 입장에서 일부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는 있다. 다만 억울함도 잠시뿐 수많은 투자자들은 돈을 잃은 반면, 이들은 보통 사람은 평생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을 거머쥐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의 상장사 경영진이 스톡옵션으로 얻은 자사 주식을 단체로 대량 매도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라며 "카카오와 그 계열사들이 단기간에 급성장했지만 윤리경영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덩치만 큰 어린아이'라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