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대 불법 다단계'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QRC뱅크 대표가 범죄수익금 수십억원을 기숙학원 사업에 빼돌린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이 같은 수법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복수의 정치권 인사가 거론돼 정치권의 배후 의혹이 제기된다.
구속 중인 QRC뱅크 고도형 대표가 범죄 자금 은닉을 위해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는 새로운 법인(QRC에듀)에 기숙학원을 넘긴 인물들 중 한 명은 전직 국회의원의 측근 인사다. 해당 정치인은 야권 인사로 한때 '진박(眞朴)' 성향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 이천시에서 농지 1400여평을 구입해 기숙학원 건물을 짓다가 QRC에듀 법인으로 넘긴 A(64)씨는 경기도의 한 사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중·고등학교·대학교에서 30여년간 교사·교수로 재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학재단은 전직 국회의원인 B씨가 이사장을 역임했던 곳이다.
A씨는 B 전 의원이 진행하는 여러 교육 사업에도 도움을 주는 등 오랜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정치권 인맥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A씨는 B 전 의원에 이어 해당 지역구에 야권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출신인 C씨의 후원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A씨가 해당 기숙학원 사업의 인허가를 빨리 받는 등 특혜를 받기 위해 정치권 인사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초기 A씨와 함께 사업을 했던 D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A씨로부터 국민의힘 인사인 C씨가 힘을 써줘서 인허가가 빨리 진행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따로 진행하고 있었던 강원도 한 지역의 건축 사업과 관련해서도 C씨에게 도움을 받고자 부탁을 했다"며 "실제 C씨로부터 해당 지역 시의회 의장을 소개받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이 둘이 나눈 메시지 내역을 보면 C씨는 D씨에게 강원도 한 지역 시의회 의장 연락처를 넘겨주며 '한국당 XX지역 당협위원장 OOO이 전화해보라고 해서 연락드렸다고 하시라'고 하는가 하면, '건축과장하고 몇시에 어디서 만나나. 의장하고 통화 좀 하려고 한다'는 등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천시 또한 기숙학원이 건축 되는 도중 건축주 명의 변경을 승인해 준다. 원래 이 건물은 '매매·임대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만 인허가를 내주는 '부동산개발업 비등록' 상태였는데 돌연 이를 뒤집은 셈이다. 매매·임대를 막기 위해 통상 건축주가 파산·사망하는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명의 변경을 해주지 않는다.
이천시는 특혜는 없었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이천시 관계자는 "건축 인허가에서는 시스템상 특혜가 있을 수 없다. 인허가 시 '새움터'라는 프로그램으로 등록해 건축주를 직접 만나지도 않을뿐더러 모든 과정이 다 공개가 된다"라며 "C씨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사업은 개발행위와 건축 인허가가 함께 접수됐다. 2018년 7월 20일 접수했고 같은 해 9월 7일 승인이 났다. 법령상 건축 인허가 기간이 3~5일인데 두 달 가까이 걸렸으므로 오히려 늦어진 것"이라며 "서류 보완 등 과정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이어 명의 변경에 대해선 "과다한 채무 등으로 이전 건축주가 사업을 끌고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해서 법률에 근거해 승인해 준 것"이라며 "이에 대한 근거는 담당자가 이전 건축주 측에서 첨부한 서류 등을 바탕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결국 이천시가 승인을 해주면서 '(주)다올'이라는 법인에서 고 대표가 새롭게 설립한 'QRC에듀'라는 법인으로 건축주가 변경됐다. 당시 고 대표는 QRC뱅크 돈으로 토지 및 공사대금을 납부하고, 양수인은 QRC에듀로 하는 수상한 계약을 맺는다.
이렇게 해당 사업에 범죄수익금 약 40억원이 흘러 들어갔다. 현재는 준공을 완료해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이 입점해 영업을 하고 있다. 토지와 건물을 합해 약 120억원의 가치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은닉된 범죄수익이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는 동안 자가 증식을 한 셈이다.
당사자들은 해당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A씨는 "D씨한테 C씨를 소개해주고 함께 식사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인허가에서 C씨를 통해 특혜 받은 적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투자를 해준다던 D씨가 멋대로 공사 업체를 2~3개 끌고 왔다가 사고가 나서 오히려 과다한 채무가 발생했다. 악의적인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QRC에듀로 명의가 넘어갈 당시에는 해외에 나가 있어서 잘 모른다"며 "D씨 때문에 빚이 많아지는 등 너무 힘들었다. 인수업체가 있다면 넘기자고 해서 동의하고 넘긴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야권 전직 의원에 대해서는 "사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이라며 선을 그었다.
현재 국민의힘 한 지역 시도당에서 당직자로 활동하고 있는 C씨는 "A씨 소개로 D씨와 두 차례 식사를 한 기억이 난다"면서도 "이천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근처에 가본 적도 없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C씨는 "A씨와는 같은 교회를 다니는 등 워낙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어서 건축 사업을 한다길래 '설계는 이천 시청 옆에 큰 곳 있으면 그런데 찾아가서 의뢰해야 아마 잘 될 것'이라는 조언을 해준 적만 있을 뿐 인허가 관련해서 누구한테 부탁을 한 적이 전혀 없다"며 "이천시 담당자한테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D씨에게 강원도 지역의 시의회 의장을 소개해준 것은 D씨가 하도 억울하다고 하길래 의장한테 전화를 걸어서 '민원 때문에 그러는데 한 번 볼 수 있겠나' 물어보고 D씨를 소개해 준 것뿐"이라며 "해당 의장을 실제로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억울하다고 해서 민원을 들어준 게 전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