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의 神' 쿠드롱에겐 4대 천왕보다 무서운 선수가 있다

'새 역사 썼다' 쿠드롱이 5일 NH농협카드 챔피언십에서 조재호를 꺾고 정상에 오르며 최초 4회 우승을 이룬 뒤 포효하고 있다. PBA

결국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웰컴저축은행)이 프로당구(PBA)마저 접수했다. PBA 최초의 4회 우승과 두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쌓았다.

쿠드롱은 5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서 열린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조재호(NH농협카드)를 가볍게 제압했다. 세트 스코어 4 대 1(15:6 15:3 11:15 15:1 15:12) 승리로 우승컵과 상금 1억 원을 들어올렸다.

지난달 크라운해태 챔피언십까지 두 대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당시 결승에서 쿠드롱은 스페인의 강자이자 지난 시즌 왕중왕전 챔피언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를 역시 4 대 1로 눌렀다. PBA 최초의 3회 우승이었다.

여세를 몰아 쿠드롱은 4회 우승이라는 금자탑까지 쌓았다. 여자부(LPBA) 이미래(TS샴푸)와 함께 남녀부 최다승 기록이다. 쿠드롱 외에 PBA 다승자는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크라운해태)와 강동궁(SK렌터카)뿐이다. 그나마 2승으로 쿠드롱의 절반이다.

PBA는 4승의 이미래를 비롯해 3승의 임정숙(SK렌터카), 2승의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 김예은(웰컴저축은행), 강지은(크라운해태) 등 LPBA에 비해 다승자가 적다. 이미래가 3회 연속 정상에 올랐는데 PBA는 쿠드롱이 2회 연속 우승이 최장이다. 그만큼 PBA에 강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PBA에서 쿠드롱이 이제 명실상부한 최강으로 군림하는 모양새다. 벨기에와 한국을 오가는 시차 등을 감안하면 한 수 위의 기량과 멘탈을 과시하고 있다.

쿠드롱이 5일 NH농협카드 챔피언십 결승에서 조재호를 상대로 샷을 구사하는 모습. PBA

이날 결승도 마찬가지였다. 쿠드롱의 상대는 국내 최고수 평가를 받는 조재호. 더군다나 소속팀인 NH농협카드 타이틀 스폰서 대회라 우승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 그러나 쿠드롱이 펼친 절정의 샷에 '슈퍼맨' 조재호도 힘을 쓰지 못했다.

쿠드롱은 1세트를 4이닝 만에 따냈고, 2세트는 10분 만에 3이닝으로 끝냈다. 조재호가 손 쓸 틈도 없었다. 쿠드롱은 3세트를 내줬지만 4세트 다시 힘을 냈다. 1이닝 뱅크샷을 포함해 8점을 몰아친 뒤 2이닝 폭풍 7득점하며 15점에 도달했다. 5세트에서는 10 대 12로 뒤진 6이닝 5점을 쓸어담아 우승을 확정했다.

이닝 평균 득점이 무려 3.55점에 이르렀다. 쿠드롱은 역대 결승 최고 애버리지를 찍었고, 이번 대회 '웰뱅톱랭킹 톱애버리지'에 올라 상금 400만 원도 추가했다. 그야말로 역대급 결승 퍼포먼스였다.

이번 우승으로 쿠드롱은 올 시즌 상금 랭킹 1위(2억 650만원)로 올라섰다. 2위는 1억1650만 원의 마르티네스다. 통산 상금 랭킹에서도 쿠드롱은 1위(4억5800만 원)에 등극했다. 지난 시즌 왕중왕전 상금 3억 원을 받은 사파타(4억3350만 원)을 넘어섰다.
 
쿠드롱은 PBA 합류 전부터 세계 최강으로 꼽혔다. 세계선수권 2회, 월드컵 17회 우승을 이루며 세계캐롬연맹(UMB) 세계 랭킹 1위를 달렸다. 토브욘 브롬달(스웨덴),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등과 이른바 '4대 천왕'으로 불렸다.

PBA 출범 이전인 2017 LG U+ 3쿠션 마스터스 당시 쿠드롱(밑줄 왼쪽 두 번째)이 4대 천왕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코줌코리아

그런 쿠드롱이 2019년 출범한 PBA를 휩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쿠드롱은 단판제인 UMB와 다른 세트제와 서바이벌 예선 등 PBA 방식에 고전했다. 4번째 대회인 TS샴푸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한 쿠드롱은 지난 시즌 같은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러더니 올 시즌 완전히 물 오른 기량을 선보이며 두 대회 연속 우승까지 이뤄낸 것이다.

경기 후 쿠드롱은 "이제서야 긴장이 풀려 매우 기분 좋고 행복하다"고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PBA 최초 2회 연속 우승과 통산 4회 우승에 대해 "매우 특별하고 압박감 넘어 집중해서 이룬 우승이라 자부심이 있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또 쿠드롱은 "준결승에서 80%였다면 결승전에서는 100%의 컨디션이었다"면서 "경기력이 최대치로 따라줘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다"고 역대 결승 최고 애버리지의 비결을 밝혔다. 결승 상대였던 조재호에 대해 "좋은 스포츠맨이고 매력적 선수"라면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공을 빨리 치면서 굉장히 잘 하기에 내가 아니었다면 우승했을 것"이라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는 철저한 프로의 자세도 틀려줬다. 쿠드롱은 "(프로 전에도 최고 선수로 불린 데 대한) 자부심이 당연히 있다"면서도 "과거 업적도 중요하지만 지금 못 하면 좋은 선수라고 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고 평소에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많은 노력을 하는데 (4강과 결승이 펼쳐진) 오늘 아침에도 훈련을 했다"고 강조했다.

쿠드롱(오른쪽부터)이 5일 NH농협카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NH농협카드 윤상운 사장, 여자부 우승자 김가영과 포즈를 취한 모습. PBA


이런 쿠드롱에게 무서운 선수는 강자들이 아니다. 쿠드롱은 PBA에 4대 천왕이 와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면서도 "(UMB 시절에도) 4명이 다 같이 잘했으니 흥미롭긴 할 것"이라며 은근한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쿠드롱은 미지의 선수를 경계한다. 쿠드롱은 "PBA에 라이벌이 많이 있는데 처음 대결하는 상대는 파악하기 어려워 위험하다"면서 "그 부분은 조심하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신정주(신한금융투자)는 주니어 시절보다 PBA에서 더 잘 해서 굉장히 놀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쿠드롱은 올 시즌 휴온스 챔피언십 8강전에서 신정주에 1 대 3 패배를 안았다. 특히 TS샴푸 챔피언십에서는 아마추어 초청 선수인 당구 유튜버 해커와 32강전에서 0 대 3 완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다. 쿠드롱이 라이벌로 처음 대결하는 선수를 꼽은 이유다. 그것이 최강으로 군림해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쿠드롱은 "아직도 당구를 사랑하고 잘 하고 즐기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가능한 오래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UMB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은 쿠드롱이 PBA에서도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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