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종환 부장판사)는 전날 전국학부모단체연합과 서울교육사랑학부모연합 등이 제기한 청소년 방역패스 도입 행정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3일 정부가 발표한 대책 중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 청소년 방역패스 의무시설로 지정된 곳은 본안 1심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법원은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백신 미접종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집단의 국민을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은 위헌적 조치"라며 "방역패스가 미접종자 집단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을 해 헌법상 평등원칙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 학원과 독서실 이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것은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해서만 학원·독서실 등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등 불리한 처우를 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백신 접종자에 대한 돌파감염도 상당수 벌어지고 있어 백신 미접종자에 대해서만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백신 미접종자가 접종자에 비해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자영업 시민단체 등 법원 판결에 "정부의 기본권 침해 정책에 제동"
법원 결정을 두고 시민단체와 각계 전문가 등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먼저 자영업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정부의 기본권 침해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전국 스터디카페·독서실 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보건복지부는 백신 미접종자가 학습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규제해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한 국민의 인생을 망쳐버리려 하고 있다"며 "복지부는 시험을 앞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학습권과 그들의 꿈을 짓밟을 명분도, 권리도 없다. 지금이라도 법원이 발표한 스터디카페, 독서실 방역패스 적용 정지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함께하는 사교육 연합' 또한 "대한민국 사법부가 양심과 법리에 따라 합리적이고 신속한 결정을 내려 행정부의 권력남용을 견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지켜준 부분에 높은 존경심을 표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서울행정법원에 식당·카페 등에 적용되는 방역패스 집행정지를 요구하는 집단 소송을 제기한 조두형 영남대학교 약리학교실 교수 역시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백신패스는 시민이 백신 접종을 선택할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탄압하는 정책"이라며 "이를 중단한 법원의 결정을 반긴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10일부터는 마트나 백화점에서도 방역패스가 적용되는데 이 또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물건만 사고 나오는 마트에는 방역패스를 적용하면서 잠시 머무른다는 공통점이 있는 KTX나 지하철은 적용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의·과학적 관점에서 아쉬워", "시의성 중요한 방역 정책에 악영향 우려"
반면 일부 의료계 전문가들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의·과학적 관점에서 법원의 결정이 아쉽다"는 목소리를 냈다.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법원이 접종자 돌파감염도 많아 미접종자가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하지만 이는 미접종자가 다중이용시설에서 감염될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한 법원이 제시한 통계자료를 보면 감염 예방 효과에 있어서는 가장 효과가 낮았던 시기를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졌다"며 "일부 사실과 다른 정보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낳을 수 있고 사법부가 방역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방역 전문가 등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방역패스 정책에 대해서도 "거리두기로 피해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출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봐야 한다"며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피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 대책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역시 "법원이 방역 정책의 최종 심사 권한을 갖게 됐다"며 "방역정책에 대한 가처분신청이 인용되었다는 것에 심히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 여부는 시급하지도 않은데 이번 가처분신청으로 정부 정책 시행 자체를 막은 것은 문제"라며 "방역 정책의 경우 시의성이 중요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식으로 법원에서 제동을 걸 경우 방역 상황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정부는 법원의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에 대한 '청소년 방역패스' 효력정지 결정과 관련해 즉시 항고하기로 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현재의 방역상황을 안정화시키고 다시 일상회복의 재개를 위해 방역패스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신속하게 소송을 진행할 것이며, 이번 인용 결정에 대해서도 즉시 항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