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번 사건은 과학화경계시스템 관리 부실, 지휘통제실장의 상부 보고누락 등 여러 원인이 겹쳐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이 사건을 그 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나왔었던 단순 '기강 해이'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 군이 자랑하던 '완벽한 경계'가 허상임을 인정하고 경계 개념을 수정하며, 그동안 등한시했던 운영 시스템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찍혔는데도 인지 못해…영상은 4분 앞쪽 불러오고 지휘실은 보고누락
5일 합동참모본부가 기자들에게 한 설명에 따르면 월북자 A씨는 1월 1일 오후 6시 36분 일반전초(GOP) 철책을 넘었다. 여기에 설치된 과학화경계시스템 광망은 일정 수준으로 휘어지거나(절곡) 끊어지면 경보를 울리게 돼 있는데, 실제로 경보가 울려 초동조치부대가 출동했다.경보가 울리면서 CCTV 카메라 3대도 A씨 모습을 포착했고 팝업창까지 떴지만 감시병들은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합참 관계자는 그 이유에 대해 "카메라에 찍힌 영상에는 건물에 가리는 감시 사각지대가 있었고 흐릿하게 찍혔으며, 경보가 울린 직후 상황평가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경보가 울린 직후 상황평가를 위해 스크린에 여러 정보를 입력하고 화면을 띄우는 과정에서 영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지휘통제실에서 지나간 영상을 다시 돌려보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이럴 때는 서버 시간 기준으로 상황이 발생한 바로 그 시간에 촬영된 영상과 함께 그전 30분까지 영상들을 확인한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제하는 메인 서버와 영상이 저장돼 있는 서버 시간이 4분 정도 차이가 났다.
때문에 지휘통제실에서는 6시 6분에서 36분까지 촬영된 영상을 불러오려고 했지만 실제로는 6시 2분부터 32분까지 촬영된 영상을 불러오는 결과가 발생했다. 당연히 해당 영상엔 A씨가 촬영되지 않았다.
원래는 하루 2번 동기화를 통해 이 시각을 딱 맞게 세팅해야 한다. 하지만 부대는 동기화를 하면서 두 서버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메인 서버만 동기화시키면 해당 작업이 끝난다고 착각했다.
그 결과 몇 시간 뒤인 오후 9시 17분 DMZ를 보는 열상감시장비(TOD)에 A씨가 포착됐을 때, 철책에 경보가 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대장은 그가 월북이 아니라 귀순한다고 판단하게 됐다. 뒤늦게 월북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수정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10시 49분쯤 A씨는 MDL 북쪽 72m 지점에서 식별됐다.
이후 2일 오전 0시 48분 포착을 마지막으로 A씨가 어떻게 됐는지는 현재까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계작전 시스템 문제와 부실 대응 결합돼 월북 허용
이번 사건은 경계작전 시스템 문제와 군의 부실한 대응이 함께 결합돼 있다는 진단이다.먼저, 감시병 3명이 9개씩 모두 27개 화면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알람이 울리고 상황평가를 하기 위한 화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은 A씨가 철책을 넘는 장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메인 서버와 저장 서버 시간이 4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한 시간 앞의 영상만 불러왔으니 A씨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게 됐다.
평소 메인 서버와 저장 서버 시간이 정확하게 동기화됐거나, 지휘통제실이 6시 36분(실제로 불러온 영상은 6시 32분) 앞쪽 영상만 불러오지 않고 그 뒤에 벌어진 일을 5~10분 정도만 확인했더라면 사건은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었다. 부대가 메인 서버와 저장 서버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일도 문제고, 지침도 현실에 맞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합참 관계자는 "지침상에 사건이 벌어진 시점 5분, 10분, 30분 앞쪽 영상까지 돌려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죄 수사를 할 때도 정확한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CCTV를 사건 발생 시각 '앞'뿐만 아니라 '뒤'도 확인하는 일이 상식적이다. 군 지침이 상식을 못 따라간 셈이다.
게다가 지휘통제실장은 이상이 있든 없든 대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기고 본인 선에서 자체적으로 상황을 종료시킨 뒤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대장은 오후 9시 17분 DMZ에서 A씨를 발견했을 때 앞서 6시 36분에 경보가 울렸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군대는 보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판단해서 작전을 지휘하는 대대장이 앞서 경보가 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두 사건을 연결해서 볼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지휘통제실장에게 무거운 책임이 돌아갈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22사단 지역에서 발생한 경계작전 실패는 있어서는 안 될 중대한 문제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점에 대해 군은 특별한 경각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현장 조사에서 드러난 경계태세와 조치, 경계시스템 운영 문제를 해결하고 군 전반의 경계태세에 대해 특별점검을 실시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박경미 대변인이 전했다.
"해당 부대 할 수 있는 일 없었다" 지적도…국방부 "과학화경계시스템 보강하겠다"
다만 작전 환경 특성상 제때 보고가 이뤄졌더라도 해당 부대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개미 하나 안 놓치는 완벽한 경계'를 자랑하던 군 당국이 자충수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경계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비판이다.육군 27보병사단장, 특전사령관을 지낸 전인범 퇴역 중장은 "부대가 오후 6시 36분에 월책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DMZ에서 월북자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위험이 도처에 있으므로, 아군 병력이 출동하더라도 그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설사 지휘통제실장이 보고를 제대로 해서 A씨가 오후 9시 17분 TOD에 포착됐을 때 대대장이 월북자임을 짐작했다고 치더라도 마찬가지다. 무리하게 확보하려다 지뢰라도 밟으면 더 문제다"며 "오히려 서버 시간이 평소에 4분 차이가 나는데도 이를 몰랐을 정도로 과학화경계시스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쪽에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 현재 한국군은 MDL을 따라 선을 그리고 이를 따라 병력을 배치하는 선형방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저출생과 병력 감축으로 이렇게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그 동안 여러 관련 사건을 통해 지적되고 있는 판국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월책 또는 침투 순간보다는 그 흔적을 찾는 데 집중하며 이를 빠르게 찾아내 봉쇄선을 설치한 뒤 민간인에게 위협이 되기 전에 상황을 끝내는 지역방어 방식이 보다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전 장군은 "이를 위해선 적외선·열상 감시장비와 인공지능(AI)을 통한 식별 기술 등을 최전방에 빨리 적용해야 한다"며 흔히 나오는 '지휘관 책임론'에 대해서도 "지휘책임이라는 미명하에 무차별적으로 책임을 뒤집어씌워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서 "지난해 귀순 상황(2021년 2월 '헤엄 귀순') 발생 이후 해당 지역 인근 6개소(6km 구간)에 AI를 적용한 과학화시스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며, 음원 활용과 레이더 연동 AI 경계체계도 현재까지 5개소(4.8km)에 설치했고 올해 6월까지 시범 운용한다"며 "이 결과를 반영해 22사단 전 지역에 있는 노후된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교체하고, 2025~26년 모든 GOP 지역 과학화경계시스템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