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새해를 맞아서 이번에는 좀 따뜻한 얘기를 전해 주실 한 분을 초대했습니다. 의사이자 에세이 작가고 또 인플루언서이기도 하세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정인이 사건. 이런 심각한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주목을 받으셨던 분인데 오늘은 훈훈한 이야기를 전해 주러 오셨습니다. 평생 남한산성 앞에서 김밥을 팔아 모은 재산을 기부한 할머니가 계세요. 그 할머님을 만난 사연인데 어떤 얘기인지 직접 들어보죠.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남궁인> 안녕하세요. 남궁인입니다.
◇ 김현정> 이렇게 따뜻한 얘기로 뵈니까 어색해요. (웃음)
◆ 남궁인> 늘 뭔가 좀 심각한 사건으로 뵀는데. (웃음)
◇ 김현정>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SNS에다가 남궁인 선생께서 '얼마 전에 성자를 만났다' 이렇게 쓰면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청와대에서 열린 어떤 자리에서 만나셨다고요?
◆ 남궁인> 네, 작년 12월 3일이었고요. 청와대 초청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동보호센터 세이브 더 칠드런에 홍보대사 자격으로 참가를 했는데요. 청와대에서 14개의 봉사 기부, 그러니까 나눔 단체의 단체장과 대표하는 인물을 초청을 해서 연말이니까 훈훈하게 이렇게 좀 상징적으로 기부도 하고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뭔가 이 단체기관장들 이런 분들이 오셨는데 유독 정말 제가 볼 때는 성자가 거기 껴 있었습니다. 고령의 할머니.
◇ 김현정> 연세가 90이 넘으신, 거동도 불편하신 할머님이시더라고요.
◆ 남궁인> 92세시고요. 그 남한산성 앞에서 평생 김밥을 판 돈이랑 집과 땅을 판 돈 6억 5000만 원을 넘게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 김현정> 남한산성 앞에서 김밥 장사를 하셨으니까, 그렇게 해서 6억 원을 버셨다는 건 정말 쓸 거 안 쓰고 먹을 거 안 먹고 어떻게 모은 돈일 텐데 그 돈을 다 기부를 하셨어요. 게다가 기부뿐만 아니라 할머님의 생애 하나하나가 다 감동적이었다면서요?
◆ 남궁인> 그냥 우리가 전 재산을 기부하면 그냥 금전적으로 돈을 많이 낸 분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분이 어렸을 때도 되게 가난하게 사셨고 20살 이전에 결혼을 하셨는데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하신 거예요. 그래서 가족 없이 사시니까 그때부터 발달장애인, 길에 버려진 발달장애인을 40년 전부터 같이 수발하면서 같이 집을 마련해서 사신 거예요.
◇ 김현정> 발달장애인 한 명이요?
◆ 남궁인> 10명도 넘더라고요.
◇ 김현정>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같이 함께 살자, 살자 한 것이 10명 넘는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고 계세요?
◆ 남궁인> 그래서 게다가 지금은 이제 고령이 돼서 직접 이렇게 수발 들거나 이런 걸 못 하세요. 그래서 딱 구순이 되니까 재산이 셋방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셋방을 빼서 그 보증금을 기부를 하고. 복지기관, 그러니까 이전에는 집이었는데 본인 집이었는데 기부를 하셨어요. 그 집으로 들어가서 장애인들이랑 지금 함께 살고 계신.
◇ 김현정> 방 보증금까지 빼서 세상에 기부를 하고 본인은 이제 자식같이 지금 지내시는 거잖아요.
◆ 남궁인> 네, 정말 엄마라고 부른다고 하시더라고요.
◇ 김현정> 그렇죠. 그 자식들과 함께 기관으로 들어가서 이제 살고 계시는.
◆ 남궁인> 참 보증금을 빼서 그냥 집을 기부할 수는 있지만 보증금을 기부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 김현정> 심지어는 의인상으로 받으신 그 상금도 또 기부하셨다면서요?
◆ 남궁인> 엘지 의인상 9월에 받으셨던데 그때 상금이 5000만 원인데 당연히 이 5000만 원도 남김없이 다 기부를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돈을 두고는 못 산다. 나눠주면 좋다, 이 정도로 이렇게 소감을 짤막하게 밝히셨어요.
◇ 김현정> 여러분, 제가 유튜브로 할머니 사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마는 거동도 불편하신. 여기 출연하셔서 걸어오시는 것도 불편하실 수 있는 이런 정도 할머님이세요. 이제 할머님을 만나고 그야말로 감동을 받은 우리 남궁인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데 할머님이 저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면서 한 말씀이 유독 가슴에 남는다 그러셨네요.
◆ 남궁인> 일단 청와대 공식자리니까 게다가 기관장. 유명 연예인들이 있는 자리니까 상당히 딱딱한 그런 경제 발전이 어쩌고 국가적인 위상이 어쩌고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으니까 전혀 그런 얘기가 아니라 갑자기 이런 개인 얘기를 하시기 시작한 거예요.
◇ 김현정> 뭐라고 하세요?
◆ 남궁인> 일단은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셨어요. 그런데 너무 가난했고 너무 가난해서 배가 고파서 그 배가 고픈 게 너무 힘드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10살 때 경성역에 나와서 순사의 눈을 피해서 김밥을 파셨는데 그래서 돈이 생기셨대요. 그래서 이 돈으로 밥을 먹었더니 이게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았는데 돈만 있으면 이 행복을 나눠줄 수 있구나. 이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나랑 똑같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구나. 그래서 90살까지 다 주셨다는 거예요.
◇ 김현정> 일제강점기에 순사 눈 피해서 사먹었던 그 김밥 한 줄의 행복. 이런 행복을 남들도 느끼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한 번은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평생은 못하는.
◆ 남궁인> 보통 야, 돈이 더 있으면 좋겠다라고 범인은 생각하지.
◇ 김현정> 그렇죠.
◆ 남궁인> 그 말을 들으니까 너무 숙연해지는 거예요. 거기 모든 사람들이 진짜.
◇ 김현정> 그러네요.
◆ 남궁인> 안 울 수 있는 사람이 거기에 없었습니다.
◇ 김현정> 천사를 정말 만나고 오셨어요. 살아 있는 천사. 의사이자 작가, 남궁인 교수 지금 만나고 있는데 그나저나 김밥 할머니 못지않게 남궁인 교수도 없는 시간 쪼개가면서 아동보호단체 홍보대사하고 계시잖아요.
◆ 남궁인> 네, 저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죠.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하필 제 직장이 응급실이었죠. 그래서 응급실에서 지금 직업인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막상 일을 해 보니까 학대 피해 당한 아동이 너무 많아요. 게다가 정말 뭐 돌도 안 된 아이를 지적 장애가 남을 정도로 폭행을 심하게 했는데 그 폭행을 심하게 당한 아이를 저는 직접 보니까 아이가 뭐 두개골이 부서져 있고 아이가 의식이 없고 그런데 이 가해자는 처벌을 그냥 폭행죄로 몇 년 받고 나오고 이런 걸 보니까 도저히 이거를 참을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 아동 보호에 관련된 글을 쓰고 또 행동을 하다 보니까 2018년에 일명 괴물 위탁모 사건이 있어요. 사설 위탁모가 아이들을 폭행한 사건. 그리고 작년에 일명 양천구 아동학대 사건, 정인이 사건이죠. 그런 사건들까지 직접 목격을 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에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고 그 현장이 정말 끔찍하다. 그래서 아동들을 조금 보호해 달라는 활동을 또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사실은 홍보대사라는 게 이게 무슨 보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걸 해서 엄청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 할 일이 있는 분들이 그걸 제쳐두고 그 단체의 홍보를 위해 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 남궁인> 그런데 그 현장에서 아이들 정말 학대당한 아이들이라든지 특히 가끔 시신들을 보게 되면 이 일을 해서라도 그 약간 죄가 좀 속죄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정말 이 세상에 있어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유일한 존재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 김현정> 제일 기억에 남는. 그런 피해아동을 많이 만나고 오셨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아이는 누구였을까요?
◆ 남궁인> 가장 최근에 본 정인이 사건 때 그 아이 같습니다. 너무 반복적으로 거의 태어났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고 또 저희가 심정지 상태로 온 거예요. 그 전에 좀 하루라도 우리가 일찍 발견했으면 살았을 텐데 정확히 심정지가 된 상태로 와서 저희가 6시간 정도는 살렸는데 더 이상 살리지 못해서 사망 선언을 했었거든요. 그게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그 마지막 그날 아침에 있었던 폭행이 너무 끔찍하기도 해서.
◇ 김현정> 오늘 김밥 할머님도 그렇고 또 아동보호를 위해서 이렇게 앞장서고 있는 남궁인 교수도 그렇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데 한몫을 하고 계시는 분이에요. 지금 듣고 계신 분들께 우리 맨날 정치 이야기만 하고 좀 막 싸우고 이런 얘기만 하다가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하니까 마음이 훈훈해지는데 지금 듣고 계시는 분들께 세상을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한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어떤 느낌인지 그런 이야기를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남궁인> 뭐 제가 어떤 일을 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상당히 저는 부끄럽고요. 제가 그런데 박춘자 할머니 있거든요.
◇ 김현정> 아까 김밥 할머니.
◆ 남궁인> 전 재산 (기부하신) 김밥 할머니. 그분이 정말 청와대에 초청 받아서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갔고 번듯한 사람들이잖아요. 단체 대표, 유명 연예인. 그런데 이분은 그야말로 그분들은 청와대 초청받은 지위도 있고 게다가 앞으로도 그 지위를 누릴 게 분명한 건데 할머니는 정말 조용한 자리에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40년 동안 장애인 돌보면서 아무것도 안 남기고 다 베풀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사실은 초청 받은 사람들이 다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패배다 이거는. 이거는 사실 저런 분이 초청 받아야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부끄럽다. 이런 감각을 느꼈었거든요. 그래서 뭔가 이런 한없이 사람의 본성 자체가 워낙에 이타적이고 그렇게 좀 숭고하게 두렵기까지 하게 이타적인 그런 분들도 있다는 것. 오늘 그냥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 김현정> 네, 지금 뭐 할머님이 대단하시다, 감동적이다. 이런 문자. 할머니를 돕고 싶다. 이런 문자들도 많이 들어오는데요.
◆ 남궁인> 어차피 다 베푸실 거라서. (웃음)
◇ 김현정> (웃음) 여러분 주변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없는지 오늘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소식 전해 주신 남궁인 교수께도 감사드리고요.
◆ 남궁인>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할머님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 남궁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