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29일 두 항공사 기업 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하는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공정위가 올린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인수하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한 우리나라 공항 슬롯 중 일부를 반납해야 한다.
슬롯이란, 항공기가 공항에서 운항을 허가받은 권리로, 인천공항 김포공항 제주공항에서 비행기를 운항하려는 항공사는 운항 전 슬롯 배정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가 보유한 한국공항 슬롯 중 일정기준의 슬롯을 '경쟁제한성이 추정되지 않도록 하거나, 점유율 증가분을 해소하는 수준'으로 반납하고, 추후 재배분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가 간 항공 협정을 통해 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에게 배분하는 운항 권리인 '운수권' 역시 일부 반납하도록 했다.
반납 운수권은 관련법상 국내 항공사에게만 재배분이 가능하다. 국토부는 국내 LCC에 운수권을 재배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이같은 구조적 조치를 이행하기 전까지는 운임인상 제한, 좌석 등 공급축소 금지, 서비스 축소 금지 등 행태적 조치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주, 유럽노선 누구 주냐" 운수권 배분에 대한항공 '당혹'
양사의 합병으로 자산규모 40조 원에 달하는 세계 7위의 초대형 항공사로 재탄생한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는 평가다.
특히 항공사의 자산인 슬롯과 운수권을 반납하게 되면 양사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노선 통폐합으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허희영 교수는 "비행기는 공장 하나에 해당하는데 공장을 없애면 인력들도 줄여야 한다는 논리"라며 "운수권을 제한하면 비행기를 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구조조정 없는 고용 계획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대한항공 관계자는 "운수권 배분은 합병 시너지를 떨어뜨리는 결정"이라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아니면 미주와 유럽 노선은 갈 수 있는 항공사가 당장 없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우려에 대해서는 "운수권이 배분돼 노선이 줄어든다면 다른 노선을 개발해 구조조정을 최대한 막겠다"고 설명했다.
국토부가 독점이 우려되는 미주, 유럽 일부 노선을 재분배하겠다고 밝히면서 LCC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장거리 노선이 가능한 대형 항공기를 보유한 LCC는 진에어와 신생 항공사 에어프레미야다. 진에어는 보잉 777을 보유하고 있고 에어프레미야는 보잉 787-9, 티웨이는 내년 3월 A330 운항을 준비 중이다.
대형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LCC가 장거리 노선에 뛰어들지는 미지수다.
진에어가 보유한 보잉 777은 미 파편 추락 사고로 자발적으로 운항을 중단한 상태다. 진에어 관계자는 "대형 항공기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코로나19로 업계 상황이 불투명해 장거리 노선에 참여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신생 항공사인 에어프레미야는 장거리 노선 취항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에어프레미야 관계자는 "장거리 노선 운항을 목표로 기회가 된다면 노선 배분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EU(유럽연합), 중국, 일본,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 7개국 심사가 아직 남아있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해외 경쟁당국에서 심사가 끝나야 기업결합을 이행할 수 있다"며 "한국 공정위에서 끝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올해 1월 9개 필수신고국가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신고를 진행한 이후 터키와 타이완, 베트남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했다"며 "남은 필수신고국가 경쟁당국의 추가 요청사항에 적극 협조해 조속한 시일 내에 절차를 마무리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