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 미국을 대표하는 오스카 트로피를 당당하게 들어 올린 윤여정. 그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는 칸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약한 배우들, 그리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옮겨간 영화감독들 활약에 힘입어 2021년 마지막까지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백인 중심 세계 영화계에서 비(非)백인으로서, 여성으로서, 한국 콘텐츠로서 온갖 장벽을 뛰어넘어 거둔 성과다.
윤여정, 韓 배우 최초 오스카를 거머쥐다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화이트 오스카'의 높은 벽을 넘어 지난 4월 26일(한국 시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품에 안았다.
후보 중 유일한 아시아 배우이며, 한국 배우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윤여정은 미국 이민자 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으로 열연을 펼치며 세계적인 배우들을 제치고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 등 30개 넘는 상을 받았다.
1971년 김기영 감독 작품 '화녀'로 스크린에 발을 들인 윤여정은 데뷔작부터 온갖 시상식을 휩쓸며 '배우'의 탄생을 알리더니, 이후 50년이 흐른 후 자기만의 개성과 언어를 통해 전 세계 관객마저 납득시켰다.
무엇보다 미국 내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74세 동양인 배우가 미국 문화산업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호주 선데이 모닝 헤럴드의 말처럼 "'미나리'의 윤여정은 오스카의 '영웅'"이었다. 또한 그의 수상은 워킹맘을 향해 높다란 벽을 세운 영화 산업계에 균열을 낸 행보였다.
달라진 韓 영화 위상…배우들, 韓 넘어 세계로
2021년은 윤여정의 오스카 수상을 시작으로 달라진 한국 영화계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한 해였다.
배우 송강호가 제7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공식 위촉되며 심사위원장인 스파이크 리 감독을 비롯해 5개 대륙, 7개 국가에서 온 세계적인 배우·감독과 함께 심사를 맡았다. 칸영화제는 송강호를 소개하는 글에서 "한국 영화사에서 주목할 만한 페이지를 쓰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배우로서는 전도연이 한국 배우 최초로 제67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바 있다.
또한 이병헌은 한국 배우 최초로 제74회 칸영화제 폐막식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섰다.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이자, 한국 영화인으로서는 2017년 각본상 시상자로 나선 박찬욱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칸영화제 시상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 이병헌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의 달라진 위상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블리'(마동석과 러블리(Lovely)의 합성어로, 마동석의 별명) 마동석은 영화 '이터널스'를 통해 한국 배우 출신 첫 슈퍼 히어로이자 불멸의 히어로 중 한 명인 길가메시로 변신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에 입성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을 비롯해 배우 안젤리나 졸리, 셀마 헤이엑 등과 호흡을 맞춘 마동석의 모습에 국내외 팬들은 열광했다.
전종서 역시 영화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버려진 자들의 땅' 등을 연출한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의 판타지 영화 '모나리자 앤 더 블러드 문(Mona Lisa and the Blood Moon)'에 캐스팅돼 할리우드 진출을 알렸다. 전종서는 케이트 허드슨, 에드 스크레인, 크레이그 로빈슨 등과 호흡을 맞췄으며, 영화는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넷플릭스로 간 감독들, 1인치 장벽 넘어 전 세계 사로잡다
윤여정을 비롯해 배우들이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계를 누비기 시작한 2021년의 피날레는 감독들이 장식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 작품 '기생충'에 이어, 넷플릭스로 간 영화감독들은 오리지널 시리즈로 '1인치의 장벽'이라 불리는 자막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도가니' '남한산성' 등의 황동혁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비(非)영어권 콘텐츠로는 이례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내려갔다.
전 세계 1억 1100만 넷플릭스 구독 가구가 '오징어 게임'을 선택해 시청하며 미국 제작 '브리저튼'(8200만 가구 시청)을 제치고 역대 최다 가구 시청 기록을 갈아치웠다. 콘텐츠 강국 미국에서는 넷플릭스가 공개한 비영어권 시리즈 중 최초로 21일 연속 '오늘의 톱 10'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오징어 게임'은 미국영화연구소(AFI) TV 프로그램 부문 특별상, 2021 고담 어워즈 '획기적인 시리즈-40분 이상 장편' 부문, 2021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올해의 정주행 시리즈' 부문 주인공이 됐다. 또한 제27회 크리틱스초이스어워즈와 제79회 골든글로브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방송계 오스카'로 불리는 에미상 수상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지옥'은 공개 후 단 3일 동안 4348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 홍콩 자메이카 나이지리아 등 총 12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59여개국에서도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오징어 게임'에 이어 K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다.
오리지널 시리즈 인기에 힘입어 동명 원작 만화는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헝가리 대만 태국 브라질 러시아 등 세계 11개국에 판권이 수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