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을 방문한 어느 문필가가 인상적인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노인 한 분이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에 초점이 없습니다. 딱히 어디를 바라보는 눈이 아닙니다. 양로원을 방문하는 자녀를 기다리는 시선이 아닙니다. 아마도 자녀나 지인들의 방문이 오래 전에 끊어진, 그래서 누가 찾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미 포기한 분입니다. 더 이상 기다릴 무엇이 없는 그 노인의 눈에서 문필가는 깊은 비애를 느꼈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희망하는 것과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의 정신적인 구조가 같습니다. 미래를 긍정하며 바라보는 것이고 앞으로 걸어갈 삶의 여정에서 좋은 일이 생길 것을 믿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좀 더 깊어지면 마음이 설렙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가슴 저리게 체험합니다. 삶이 무료할 때 시간이 굴레처럼 느껴진다면 설렘이 마음에 차오를 때 시간의 흐름에 영원이 침입하면서 삶이 찬란해집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한 해는 기다림으로 시작합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待臨節)입니다.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강림절(降臨節)이라고도 부릅니다. 구세주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대림절은 구세주께서 탄생하신 크리스마스 이전 네 번째 주일부터 시작됩니다. 대림절 주일을 네 번 지내고 나서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습니다. 사람마다 삶의 상황이 다르고 그래서 기다리는 것도 다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기다림도 있습니다.
인류가 현재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코로나 19의 종식일 것입니다. 넉넉한 경제력과 원만한 건강과 가정의 행복도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사회와 이 시대의 상생과 평화,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지구 환경의 보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희망하며 기다리게 하는 근원적인 토대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써 인류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희망들이 뿌리내리는 근원적인 희망을 주셨습니다.
역사의 가장 혹독한 야만의 시대에도 기독교의 복음은 구원의 기다림을 놓지 않게 했습니다. 꼬박 2년을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맞는 대림절이 각별합니다. 이번 주일이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참된 기다림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CBS 논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