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세계와 격차는 컸다. 한국 여자 테니스가 2년 만에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코리아오픈 단식에서 16강전을 넘지 못했다.
국내에서 WTA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장수정(215위·대구시청)과 한나래(271위·인천시청)도 3회전 진출이 무산됐다. 세계 테니스의 추세인 파워 테니스에서 밀렸다.
먼저 한나래는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실내테니스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코리아오픈(총상금 11만5000 달러·약 1억3640만 원) 16강전에서 크리스티나 믈라데노비치(98위·프랑스)에 아쉽게 졌다. 2세트 뒤 발바닥 물집 부상으로 세트 스코어 1 대 2(4-6 7-5 0-6) 패배를 안았다.
믈라데노비치는 2017년 10월 단식 10위까지 올랐던 선수다. 복식도 능해 2019년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1살 위인 29살의 한나래는 149위가 역대 개인 최고 랭킹이었다.
다만 한나래는 이날 선전을 펼쳤다. 이틀 전 입국한 믈라데노비치가 시차 적응 등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기도 했지만 한나래의 강력한 스트로크가 통했다. 한나래는 보기 드물게 두 손으로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는데 믈라데노비치에 밀리지 않았다.
1세트 상대 서브 게임을 한 차례 브레이크한 한나래는 아쉽게 세트를 내줬다. 그러나 2세트 네 번이나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반격에 성공했다. 한나래의 까다로운 서브와 좌우 코너를 찌르는 공격에 믈라데노비치도 체력적으로 밀리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한나래의 짧은 발리가 라인을 벗어난 듯했지만 득점으로 인정되는 행운도 따랐다.
하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한나래는 2세트 후반부터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고, 3세트 초반에는 의료진이 점검하기도 했다. 결국 불편하게 뛰는 모습이 완연히 드러나면서 3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이어 장수정도 2회전에 나섰지만 세계 주니어 랭킹 2위 린다 프루비르토바(305위·체코)를 넘지 못했다. 1세트를 접전 끝에 5 대 7로 내준 장수정은 2세트마저 3 대 6으로 내줬다. 고교생이던 2013년 이 대회 한국 선수 단식 역대 최고인 8강 진출을 재현하지 못했다.
1995년생은 장수정은 10살 어린 프루비르토바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실수를 두려워 하지 않는 강한 스트로크에 상대적으로 체격에서 밀린 장수정이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린다는 동생 브렌다(세계 주니어 랭킹 4위)와 함께 주목을 받는 차세대 스타다.
한나래, 장수정의 2회전 탈락은 한국 여자 테니스의 냉정한 현실을 말해준다. 경기 후 한나래는 "상대가 어제 코로나19 자가 격리가 풀렸던 선수라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이 시합 중에서도 보였다"면서 "첫 세트를 무조건 잡았으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플레이가 급해져 1세트를 내준 게 패인"이라고 짚었다. 8강 진출의 호기였지만 그만큼 실력 차이가 있었다는 뜻이다.
특히 세계적 흐름에 맞는 테니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날 이사벨라 시니코바(226위·불가리아)와 2회전에서 완패한 정보영(18·안동여고)은 "국내에서는 로브로 띄우는 경기가 적잖은데 막상 WTA 투어에서는 곧바로 강타를 당하는 등 통하지 않더라"면서 "힘을 길러야겠다는 걸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이번 대회 중계 해설을 맡은 NH농협은행 스포츠단 박용국 단장은 "결국 파워에서 밀리면 세계 무대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내 선수들도 웨이트 트레이닝, 코어 운동 등으로 힘을 길러야 한다"고강조했다. 선전을 펼친 한나래도 "대회 전 트레이닝도 많이 하고 어깨 강화 훈련도 하면서 서브도 좋아졌고 공에 힘이 더해지고 좋아졌다"고 돌아봤다. 사실 일부 동양 선수들처럼 한나래의 양 손 포핸드도 서양 선수들과 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코리아오픈은 국내 선수들에게 중요한 기회다. 세계 100위 이내 선수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그해 프랑스오픈 우승자 엘레나 오스타펜코(라트비아)가 출전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정보영은 1회전에서 521위 올리비아 챈드라물리아(호주)를 누르고 WTA 투어 첫 승을 거두기도 했다. 정보영은 "500위 권 선수도 처음 경기했다"면서 "주니어 국제 대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코리아오픈 이진수 토너먼트 디렉터는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가 아니면 국내 선수들이 와일드카드를 받기 어렵다"면서 "특히 승리해서 랭킹 포인트를 따면 순위가 올라가 다른 대회에 출전하기도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2년 만에 대회가 열렸는데 이를 통해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대회가 열릴 수 있다"면서 "시차 적응도 없는 유리함이 있는 만큼 여건이 된다면 또 다른 WTA 투어의 국내 개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한국 여자 선수들의 코리아오픈 단식은 올해도 2회전에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한나래-최지희(NH농협은행)이 나서는 복식이 남아 있다. 둘은 2018년 대회 복식에서 조윤정-전미라 이후 1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세계와 높은 격차를 보이는 한국 여자 테니스가 얼마나 그 차이를 좁혀갈지 지켜볼 일이다.